김미숙. 그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하다. 참혹하게 잃은 아들의 이름을 앞에 쓰자니 가슴이 아린다. ‘씨’를 붙이기엔 너무 한가롭다. 지난 칼럼에서 ‘어머니’를 강조한 까닭이다.

나는 지금 그 이름과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을 견주고 싶진 않다. 기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너무 가시밭 길이어서다. 더구나 나는 먹물로 지내며 그 길을 권하기란 염치없는 짓이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업’의 ‘상상도 못했던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이 참사를 당했기에 어머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궁하듯 하소연했다. 행여 어머니에게 악성댓글이 인터넷에 오르내릴까 싶어 “누가 이 어머니에게 ‘정치적’이라 비난할 것인가. 아니 나는 차라리 이 어머니가 진정으로 정치적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썼다

[ 관련 칼럼 : 김미숙의 슬픔, 문재인의 사과 (2018년 12월18일) ]

기우였다. 어머니 김미숙은 여의도 정치판과 당당히 맞섰다.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 ‘김용균법’ 통과를 국회의원들에게 다그쳤다. ‘국가 경제’를 언죽번죽 들먹이는 자유한국당을 압박해 마침내 법안 통과를 이뤘다. 그랬다. 김미숙은 2018년 세밑 국회의사당의 촛불이었다. 제 잇속이나 제 사람 챙기기로 일관해온 정치판의 짙은 어둠을 온 몸으로 여울여울 밝혔다.

▲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김해기씨. ⓒ 연합뉴스
▲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김해기씨. ⓒ 연합뉴스
하지만 마음 놓을 수 없었다. 통과된 산업안전법은 자유한국당의 개입으로 ‘누더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미숙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형벌의 상한선은 높아졌지만 하한선이 없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건 똑같다. 용균이 동료들도 (위험의 외주화 범주에) 안 들어갔는데 새로 진일보한 김용균법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늦은 만남 제안에도 냉철을 잃지 않았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조차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만나면 자칫 상황이 종료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책위에서 일하는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차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상조사와 정규직화를 지시했는데, 대통령 령이 안서는 건지 사장들이 항명하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고 개탄했다. 정말이지 나도 궁금하다. 대통령의 지시를 왜 내각과 비서실이 수행하거나 점검하지 않는가. ‘친정체제’ 노영민 비서실장이 치열하게 짚어볼 사안이다. 내각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구현하지 않고 있는 사안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 김미숙은 그 자신도 비정규직 노동인으로 알려졌다.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들 잃은 고통의 시간을 어머니가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힘들다. 잠을 거의 못 잔다. 2~3시간 자다가도 벌떡벌떡 깬다… 지금 이때 나서지 않으면 (사안의 관심이 떨어져) 아무것도 못 이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한다. ‘나라가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용균이 동료들을 살릴까’ 자다가도 이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데 그럴 때면 휴대폰에 이것저것 적는다.”

그 적바림을 바탕으로 김미숙은 집회에서 읍소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숨지기 전에 이미 11명이 참사를 당했다는 사실이 되우 안타깝다.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13명 째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머니를 용기 있는 실천에 나서게 했다.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부모 김미숙‧김해기씨와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월1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했다. 사진=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부모 김미숙‧김해기씨와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월1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했다. 사진=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김미숙은 이 나라 노동인들에게 드리운 깊은 어둠을 밝혀가고 있다. 지상 75m에서 세계 최장기간 굴뚝농성을 벌인 노동인 홍기탁과 박준호는 협상 타결의 배경을 김용균의 죽음에 이어 어머니가 비정규직 고통 호소에 앞장서며 사회 여론이 움직인 데서 찾았다.

묻고 싶다. “나라가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를 오늘의 어머니처럼 밤잠 설치며 고심하는 정치인이 지금 국회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에는 또 얼마나 있을까.

외동아들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인 김미숙의 정치는 정치판의 촛불이다. 글로나마 서툰 연대의 인사를 건넨다. 힘내시라. 수많은 민중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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