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마치 자신들이 취재한 것처럼 반론까지 그대로 베껴써 항의를 받고 기사를 삭제했다. 원문 기사를 썼던 기자는 베껴쓰기 관행인 어뷰징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적극 공론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근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지난해 12월 27일 경기지역 초등학교 여성 교사가 같은 학교 여성 교장으로부터 “‘팬티를 잘 생각해 벗어라’는 발언을 듣는 등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낸 사실을 보도했다.

윤 기자는 “여성 교사는 학교 성희롱심의위에 해당 내용을 신고했지만, ‘교장 인적사항 등의 비밀을 준수한다’는 비밀서약서 작성까지 종용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고 사건의 구체적 경위를 밝혔다.

윤 기자는 피해 여성 교사를 인터뷰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여성 교장과 접촉을 시도했다. 성희롱심의위에 신고하자 비밀서약서 작성을 종용했다는 주장에 해당 학교 교감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피해자에게까지 비밀서약서를 잘못받은 것을 교육청 문의 뒤에 뒤늦게 알았다”고 해명한 내용도 담았다.

윤 기자의 기사는 4시간 후에 세계일보에 거의 그대로 실렸다. 심지어 피해 교사의 진정서 원문 사진과 해당 학교의 해명 및 반론 내용까지도 윤 기자의 기사와 같았다.

원문 기사는 “C교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이날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 교장은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팬티 관련 성희롱성 발언을 했느냐’는 물음에 ‘그건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문자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하지 않았다”고 돼 있는데 세계일보는 이를 그대로 기사화했다. 마치 자사 기자가 가해자로 지목된 교장을 접촉하고 답을 받은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이다. 성희롱심의위의 비밀계약서 요구는 실수였다는 해당 학교 교감의 발언도 기사 원문 그대로 세계일보에 실렸다.

세계일보는 애초 하의 속옷만 입은 하체가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을 해당 기사에 삽입해 선정성 논란이 일면서 사진을 삭제 처리했고 이를 미디어오늘이 기사화했다.

오마이뉴스와 윤 기자는 뒤늦게 세계일보 기사의 어뷰징 행위를 인지하고 문제가 크다고 판단해 세계일보 측에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세계일보는 원문 기사를 쓴 윤 기자에게 유선 전화를 통해 구두로 사과하고 자사의 문제가 된 기사를 11일 삭제했다. 현재 세계일보 기사는 볼 수 없다. 오마이뉴스와 윤 기자가 적극 항의하지 않았더라면 세계일보 기사는 기자가 마치 취재한 기사처럼 기록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 지난해 12월 27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를 베껴쓴 세계일보 기사. 원문 기사에 나온 사진은 물론 반론 취재 해명까지도 그대로 베껴썼다.
▲ 지난해 12월 27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를 베껴쓴 세계일보 기사. 원문 기사에 나온 사진은 물론 반론 취재 해명까지도 그대로 베껴썼다.

세계일보 측은 “저희가 언론사 내부 홈페이지에 많이 보는 기사들을 인턴 기자한테 작성을 하라고 지시하는데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인턴 기자가 실수를 많이 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며 “내부에서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면서 나온 실수로 데스크에서도 미처 확인을 못했다. 인턴 기자의 선임 기자도 미처 알지 못했다. 해당 인턴 기자한테 경위서를 받았고 재교육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윤 기자에게는 전화를 통해 사과를 드렸다”고 전했다.

윤근혁 기자는 “일명 우라까이하는 관행이 언론계에 있지만 해당 기사는 명예훼손성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당사자 반론까지도 그대로 베낀 것은 생각 없는 행동이다. 정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몇년 동안 이런 행위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기사 베끼기 관행이 이제는 기사를 통째로 훔쳐가기로 발전된 것 같다. 이런 행위를 더 이상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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