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MB정부의 무분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난 10여년 고통을 겪었던 배우 김규리씨가 지난 11일 공개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했다.

김씨는 방송에서 “광장에서 마녀사냥하듯 제가 연예인이고 또 여자이기에 (대중들에게) 공포를 확산시키는 도구로 활용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9월 보수정권 국정원의 공작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눈물로 지난 세월 고통을 호소했을 때보다 이날 밝은 모습이었다. 그는 “이제는 좀 웃고 싶다. 다 털어내고 웃고 싶어서 나왔다”며 “2019년에는 많이 웃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김씨는 오랜 세월 침묵했던 이유에 “(대중들이) 제 말을 믿어주셨을까. ‘쟤 과대망상에 걸린 애야’ 이런 식으로 올가미를 씌워서 괴롭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제 존재 자체가 그분들(댓글공작 세력)에겐 아이템이었다. 필요할 때만 쓰일 뿐 저는 조용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맹목적 댓글 공격을 회상하며 “스스로 몸과 정신을 괴롭히기도 했고, 끝에 섰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억울하고 무서웠다”며 “내 심정이나 겪었던 일들을 공개하려면 언론을 통해야 하는데, 내가 느낀 감정과 사실들을 언론이 제대로 전달해줄까 싶었다. 나만 부각되고 나만의 에피소드로 끝났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언론 보도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MB정부의 무분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난 10여년 고통을 겪었던 배우 김규리씨가 지난 11일 공개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했다. 사진=김어준의 다스뵈이다 화면.
▲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MB정부의 무분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난 10여년 고통을 겪었던 배우 김규리씨가 지난 11일 공개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했다. 사진=김어준의 다스뵈이다 화면.
MB정부의 미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전 사회적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2008년 5월1일, 김씨는 자기 홈페이지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고 썼다.

김씨는 다스뵈이다에서 이 글에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규제는 많이 풀었는데 그 대신 무엇을 받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건강권을 두고 협상을 한 것인데, 우린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반대 여론에 귀를 닫은 정부를 비판하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했지만, 이 사건 이후 김씨는 MB정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MB정부 국정원이 2011년 7월 작성한 MBC ‘좌편향 출연자 퇴출’ 관련 보고서에는 “4월 김미화, 7월 김여진 하차시킴”, “후속 조치로 윤도현, 김규리 8월경 교체 예정, 10월 가을 개편 시 신해철 김어준도 하차시켜 순차적 물갈이 방침” 등 김씨를 포함한 연예인 퇴출 계획이 담겼다. 

이보다 앞서 국정원은 2010년 3월 SBS에 김씨 출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달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도 김씨가 ‘탁현민 연출 북콘서트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김씨는 다스뵈이다 방송에서 “제가 하지 않은 일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랐더라. 북콘서트 사회를 봤다는 이유인데 난 사회를 맡은 적 없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국정원은 김씨를 “건전 연예인들과 섞어서 계도하라”는 방침도 갖고 있었다. 

김씨는 “(국정원에서) TF가 만들어진 뒤 첫 타자가 MBC PD수첩이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지난 9일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상부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김씨는 이날 방송에서 2008년 글 게시 이후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하지 못할 수 있다는 협박을 받은 사실,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 계약이 무산됐던 사실, 자신과 함께 했던 감독·제작사들이 유독 후속 작업을 찾지 못했던 사실 등을 술회했다.

김씨는 문재인 정부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인사 배제했다는 야권을 겨냥해 “거울을 보시고 본인들이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되는지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며 “나는 가해자들로부터 사과 받은 적 없다. 되레 문재인 대통령이 저희에게 죄송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김씨를 포함해 박근혜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문화예술인 인사들을 만나 “제가 가해자는 아니지만 저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고 많이 피해를 보셨다. 블랙리스트 이야기를 듣거나 피해를 입으신 분들을 만나면 늘 죄책감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이번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제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말씀드리고 싶다. 참으세요. 10년 동안. 참으시고 시간이 지난 뒤 이야기하시라”며 “그 시간 동안 (저처럼) 자기 검열을 하시기 바란다. (현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분들은 스스로 되돌아보고 문제 제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해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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