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있을 때 그렇게 관심을 가졌어 봐, 진작에 내려왔지!”

두 파인텍 노동자가 11일 오후 발전소 굴뚝 위에서 426일 만에 내려온 순간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한 시민이 소리쳤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응급침대에 실려 문밖에 나서는 동안 이를 담으려는 기자들이 취재 경쟁으로 마찰을 빚었다. 두 노동자는 침대에 누워 기자들 다툼을 그저 지켜봤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이날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지상에 내려왔다. 파인텍 노사는 이날 오전 20시간에 걸친 6번째 교섭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고공농성했던 홍기탁·박준호씨와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등 파인텍 노동자 5명은 파인텍 공장에 복귀한다.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이사는 개인 자격으로 자회사 파인텍 대표를 맡는다. 이후 고용 보장은 ‘최소 3년’, 임금은 ‘2019년 최저시급+1000원’이다. 합의는 이들이 단식에 들어간 지 6일 만에 나왔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고공농성하는 동안 몸무게가 50kg 정도로 준 데다 단식까지 해 건강 상태가 심각했다. 근육량이 빠지고 근골격계에 이상이 있어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사다리와 계단을 내려왔다. 두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이들이 내려오는 장면을 올려다보며 ‘홍기탁 힘내라, 박준호 힘내라’며 구호를 외쳤다.

▲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11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11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시민들이 11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오는 파인텍 노동자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시민들이 11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오는 파인텍 노동자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두 노동자가 차례로 땅을 밟을 무렵, 사진기자 20여명이 이들이 나오는 모습을 포착하려고 서울에너지공사 대문에 바짝 붙어섰다. 그 뒤엔 더 많은 기자가 모였다. 사회를 보던 김소연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 공동대표가 문을 열 수 있도록 비켜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취재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문이 그대로 열렸고 기자 수십 명의 사진찍기 경쟁이 시작됐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이불을 덮고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했다. 다른 파인텍 동료 노동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곳곳에서 짜증 섞인 고성이 나왔다. 뒤에 서 있던 영상기자들은 앞줄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을 향해 자세를 낮추라고 소리쳤다. “뒤로 와” “앉으라고” “같이 좀 일합시다” 등 고성을 질렀다. 다툼은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누운 응급침대가 취재진과 시민을 마주한 상태에서 이어졌다. 

▲ 취재진이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을 둘러싸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취재진이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을 둘러싸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11일 오후 5시께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11일 오후 5시께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426일 만에 지상에 내려온 두 노동자를 앞에 두고 기자들 사이 다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응원차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한숨을 쉬었다. 사방에서 “진짜 너무하네”, “이건 아니지” 등 항의가 나왔다. 기자들 고성은 두 노동자가 소감을 밝히는 중간중간에도 이어졌다.

홍기탁 전 지회장이 먼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위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노동조합 하나 지키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취재진을 포함한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는 “긴 역사 속에서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이 사회에서 그걸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진짜 더러운 세상”이라며 흐느꼈다. 두세 명의 기자도 눈물을 훔쳤다. 박준호 사무장은 “안 울려고 했는데, 감사 드린다”며 파인텍지회 조합원 5명 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온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 사진=김예리 기자
▲ 426일 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고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온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 사진=김예리 기자

차광호 현 파인텍지회장은 흐느끼면서 “저희들은 정말 청춘을 다 바쳤던 공장에서 2번, 3번 밀려나와 지금까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이 세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도 말 한 마디 못 하고, 탄압 받아도 아프다고 못 한 채 다른 곳에 옮기는 삶이 이어진다”며 “자기 자리에서 바로잡는 날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번 협상 타결이 회사가 양보한 것 아니냐고 묻는 기자도 있다. 그러나 애초 합의사항을 지키기만 했어도 이 상황이 올 리 없었다”고 말했다. 김호규 위원장은 “두 동지는 살고자,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려 굴뚝에 올라갔다. 더이상 노동자가 단식하고 고공농성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가 선물한 신발을 받아 갈아신은 뒤 연대 단식 농성자들과 함께 치료와 종합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 합의는 회사가 큰 양보를 해 만들어진 합의가 아니다. 이미 합의했고, 이행해야 했다. 그래서 이를 이행하라고 촉구한 것”이라고 강조한 뒤 힘들게 쟁취한 현실을 지켜내도록 “언론노동자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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