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현 변호사)은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MBC ‘PD수첩’ 광우병 편을 수사하다 검찰 상부의 ‘기소’ 지시 거부 후 결국 사표를 냈다.
임 변호사는 9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에서 당시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위법·부당한 수사 지휘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 발표 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수뇌부의 외압 사실을 털어놓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자신이 PD수첩 사건 1차 수사팀에 있을 때 검찰 내·외부에서 부당한 압력이 들어왔고 당시 검찰총장(임채진)이 그런 외압을 막아주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도, 검찰이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사의뢰를 받고 수사를 개시한 것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MBC PD수첩의 보도 내용이 어디까지가 맞고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국민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PD수첩 방송 내용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일은 검찰 본연의 업무가 아니다. 검찰은 언론 보도가 명예훼손 등 범죄행위에 해당할 경우에만 수사에 착수하게 돼 있고, 임 변호사를 포함한 1차 수사팀도 “일부 보도 내용이 과장·왜곡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전체적인 보도 취지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므로 형사적으로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임 변호사가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08년 6월 농식품부의 수사의뢰 후 당시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은 임 변호사에게 “이 사건은 처벌보다는 실체적 진실 발견이 중요한 사건이다”고 말했다. 최교일 1차장 검사(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기자들에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수사 목적이었지만, 범죄가 인정된다고 판단되면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PD수첩에 대한 수사의뢰는 정부기관 내부 구성원을 대신해 정부기관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것으로 부당하다”며 “검찰의 수사 착수가 범죄의 혐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 검찰의 수사권을 남용했다”고 결론 냈다.
다만 과거사위는 “관련 자료와 당시 기사,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수사 의뢰가 범정부 차원에서 사전 조율됐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있지만 조사상의 한계로 이런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대검과 법무부는 수사 목적 이외의 정치적 고려로 강제수사를 강요하려고 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기도 했다. 2008년 11월6일 대검 형사부가 작성한 ‘PD수첩 사건 향후 수사 방안’ 문건에는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검토하면서 형사소송법상의 필요성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정국 안정’, ‘야권 반발’, ‘사회 분위기나 여론’ 등을 고려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대검 형사부는 “주임검사 교체 시 그 이유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법질서 확립을 위해 수사의뢰 대상자 체포 등을 포함한 강력한 수사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과 YTN 사태 등을 감안할 때 강제수사 시 수사 반대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명분 제공 및 사회적 갈등 확산 우려가 높다”고도 검토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공소 제기 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PD수첩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한 행위도 ‘수사사건 공보에 관한 준칙’과 ‘인권 보호 수사 준칙’에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부당·위법 행위에 관여한 검사들에 형사처벌이나 징계 책임까지 권고하지는 않았다.
임수빈 부장이 검찰을 떠난 후 2009년 2월 PD수첩 사건은 2차 수사팀으로 바뀌는데 그때 검찰 지휘라인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정병두 1차장 검사였고, 담당 검사는 박길배·김경수·송경호 검사였다.
한편 임 변호사가 JTBC와 인터뷰에서 자신과 함께 사건을 맡았던 후배들이 이후 인사상 너무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며 이름을 열거하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배재덕, 조호경, 강수산나, 유동호 그리고 이동현. 나는 당신들이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PD수첩 광우병 편 진행자였던 송일준 광주MBC 사장은 “무지막지한 이명박 정권 초기, 최소한 법률가로서 양심은 지킨 검사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하겠으나 어쩔 수 없이 욕먹는 검찰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며 “용산 참사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강수산나)까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자랑스러운 후배라며 열거하는 이기적 사고와 무신경에 아연실색”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