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 대한 상습 폭행 혐의로 구속된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상습적인 성폭력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상화된 폭력에 눈 감아 온 체육계 폐쇄성을 근절해야 한다는 정치권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지난달 17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조재범 전 코치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상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조 전 코치는 심 선수가 만 17세 미성년자일 때부터 최근까지 약 4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 선수 측 변호인은 경찰이 조 전 코치 휴대전화 등 증거 확보를 위해 고소 사실 비공개를 요청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관련 사실은 지난 8일 SBS ‘8뉴스’ 보도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9일 체육계와 범정부 차원의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원내 5개 정당 모두 관계 당국과 체육계가 모두 나서 체육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소속 의원들은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해 국민생활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폭력·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진 체육계 인사는 유관 단체·협회 등에서 영구제명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문제는 이 법안을 ‘심석희법’으로 명명했다는 것. 문체위 위원장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는 10일 법안 대표 발의 및 기자회견 일정을 예고했고, 언론도 이를 따라 이른바 ‘심석희법’이 발의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한 기사 제목 일부.
▲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한 일부 보도.

국민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서울신문, 뉴스1 등 상당수 언론 보도는 ‘심석희법’이라는 명명을 따랐다. 머니투데이 정치전문매체 ‘the300’은 “왜 ‘조재범법’이 아니고 ‘심석희법’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로 문제의식을 드러냈으나, 정작 같은 매체에서도 “폭력·성폭력 가해자 체육회 영구제명…‘심석희법’ 나온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바른미래당 최원선 부대변인은 이날 “보도가 나온 후 가해자인 조재범 전 코치 이름이 아니고 피해자 이름이 계속 실시간검색어 1위에 올라와 있다. 기사 밑에는 피해자를 비하하는 혐오 댓글들이 달려 있다. 온라인상에서도 파렴치한 2차 가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의원들도 피해자 이름만이 언론에 오르는 데 일조한 셈이다.

한국기자협회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에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은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입힐 소지가 있으므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등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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