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공영방송 KBS와 MBC의 최우선 목표는 ‘정상화’였다. 최승호 MBC 사장과 양승동 KBS 사장은 공영방송이 장악된 과정을 들여다보고 구조적 문제를 뿌리 뽑겠다며 ‘적폐 청산’을 정상화 기조로 내세웠다. 정상화 기구로 출범한 MBC 노사 공동 정상화위원회(정상화위)는 1년,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진실미래위)는 이제 7개월 차를 맞았다.

성과를 보인 사안들도 있으나 사내 일부 세력과 자유한국당의 반발, 조사 권한과 방법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부족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명확한 원칙 없는 후속 조치로 정상화기구가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1월 노사 공동 위원회 형태로 설치된 MBC 정상화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과거 MBC 불공정 보도 사례 일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2년 10월 대선후보 검증 조작 보도(안철수 후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2016년 8월 ‘우병우 민정수석 지키기’ 보도 정황 확인(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감찰 내용 유출) △2011~2016년 김세의 기자 ‘인터뷰 조작’ 확인 등이다.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른바 ‘MBC 블랙리스트’ 조사 및 조치는 MBC 감사국 차원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4월 MBC는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과 MBC 내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2013년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2013년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2014년 ‘방출대상자 블랙리스트’ △2014년 안광한 전 사장 등 당시 경영진 부당노동행위 사례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KBS 진실미래위는 지난해 10월 출범 5개월 만에 기자간담회를 열고 △‘KBS 기자협회 정상화모임’(정상화모임)의 편성규약 등 위반과 정상화모임 가입 여부에 따른 ‘블랙/화이트리스트’ 의심 문건 확인 △정상화모임에 비판적인 외부 기고문을 작성한 기자 부당전보 △영화 ‘인천상륙작전’ 보도 강압적 취재 지시 및 부당 징계 △성주 군민 사드 반발 보도 강압적 취재 지시와 편성규약 위반 △‘시사기획 창-친일과 훈장’ 제작 방해 및 불방 △2012년 파업 참여자 부당징계 진상규명 및 피해자 구제와 관련한 진상규명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진실미래위가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인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이른바 ‘영포 문건’을 입수해 △정연주 전 사장 해임 등 KBS 사장 인사 개입 △2008년 ‘9·17 부당 전보 의혹’ 관련 보복성 인사 정황 등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내부 반발은 계속됐다. MBC의 경우 전임 경영진과 유착 의혹을 받은 MBC노동조합(3노조) 위원장 출신 김세의 전 기자와 세월호 참사 보고 묵살 의혹 등을 받은 박상후 전 부국장 등이 ‘MBC 언론인 불법사찰 피해자 모임’을 결성했다. KBS에선 근속 25년 이상 직원 40여명(지난해 1월 기준)이 가입된 KBS공영노동조합(공영노조)이 진실미래위를 ‘보복위원회’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현 KBS·MBC 경영진이 ‘언론탄압’을 하고 있다며 ‘적반하장’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적반하장’이라는 일각의 지적 한편에는 KBS와 MBC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9월 공영노조가 제기한 진실미래위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이 일례다. 출범 자체가 불법이라는 공영노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인사조치 권고·요구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메일 사찰 의혹’을 받은 MBC 감사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해명했으나 이메일 정보 열람은 원칙적으로 정보인권 보호 측면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절차적으로 매끄럽지 않았던 점과 별개로, 조사 속도와 성과가 구성원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공영방송 정상화기구가 반드시 규명해야 할 과제로 꼽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세월호 참사 등 축소·편파 보도 의혹과 관련해선 KBS와 MBC 모두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출범 1주년을 앞둔 정상화위는 지난해 10월 “4/4분기에 국정농단과 탄핵에 대한 보도, 세월호 참사 보도, 2017년 대통령 선거 등 선거관련 보도 조사를 진행해 조속한 시일 내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 밝힌 지 3개월이 지났다.

정상화 기구 가동의 장기화는 경영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방송사 경영진은 “정상화기구의 존재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걸 의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닻을 올린 상황에서 분명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활동 기간이 종료돼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장기적으로 경영진에 대한 신뢰도 저하,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동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앞서 ‘적폐 청산’ 기조가 표류하고 있다며 “미래 전략은 과거 청산과 따로 떼어 말할 수 없다. ‘적당한’ 청산은 ‘적당한 미래’만 낳을 뿐이다. 진실 규명, 처절한 자기 반성, 현실 진단, 공영방송 MBC의 새로운 가치 정립, 인적 청산, 인력 재배치, 조직의 혁신적 개편, 지속가능한 성장, 장기적 전략 수립은 모두 한 몸”이라고 주장했다.

정상화위 관계자는 제한된 인원과 조사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결정적인 진술을 얻어내야 하는데 과거 경영진이 채용한 이들은 특히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입 자체를 열지 않는다. 결과를 섣불리 발표하기 어려운 사안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정상화위는 조만간 활동기간을 6개월 연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부딪힌 한계를 보완할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MBC 경영진의 경우 논란에 대한 후속조치를 적시에 하거나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8월 MBC가 2014년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경력기자를 채용하며 친박·친이계 정치인 추천서를 받은 사실이 언론보도로 알려진 뒤, 현재까지도 대응 방향이 공개되지 않았다. 2012년 파업대체인력의 경우 앞서 경영진이 강원랜드 사례를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한 뒤 고용유지를 결정해 혼선을 초래했다.

오는 4월 1차 활동 기간이 끝나는 KBS 진실미래위를 향해서는 조속한 시일 내에 명확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최근 양 사장 연임으로 안정적인 활동 기간이 보장됐고, 그간 비협조적이라 평가 받았던 KBS 감사에 개혁적 성향의 인물이 선임되면서 추후 활동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진실미래위 관계자는 “과거 잘못된 행태를 기록해 역사적 교훈을 남기고, 제도 개선을 통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 맞게 단호하게 활동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경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2018년은 진실미래위 출범에 의의를 둔다면 2019년엔 상반기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며 “진실미래위 활동은 과거 잘못의 단죄에 있다기보다 미래를 잘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단 반드시 과거에 대한 정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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