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내각 총리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던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전쟁이 지닌 특성과 문민통치의 중요성을 잘 간파한 말이다. 군인들이 없는 전쟁이란 상상할 수 없다.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그들이 없다면 전투는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로 끝날 것이다. 군인을 키우기 위해 국가에선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르주 클레망소는 이 간단한 상식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전쟁에는 단순히 군인들의 판단만을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다. 전쟁에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며, 군인뿐만 아니라 수 많은 민간인 목숨과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합적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핵발전을 둘러싼 에너지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을 최우선 해야 하는 핵발전소를 설계·운영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기술자와 공학자가 필요하다. 이들의 노력 없이 핵발전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핵발전소를 비롯한 에너지정책을 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서다.

하지만 최근 핵산업계와 보수 언론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보면 과학기술자, 그 중에서도 원자력공학 전공자가 아니면 핵발전을 얘기할 자격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대목을 많이 본다. 한수원 노조는 지난달 원안위 위원들의 핵발전소를방문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원안위 위원들이 변호사, 환경운동가, 화학공학 교수, 지질환경과학 교수, 예방의학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며 원안위를 ‘원자력궁금위원회’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 보수 언론은 칼럼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이 원안위 위원장이 됐다며 누가 핵발전소 안전을 지키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 해당 칼럼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 gettyimagesbank
▲ 해당 칼럼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 gettyimagesbank
그러나 국내 핵산업 종사자들 전공을 보면, 원자력/방사선 전공자보다 다른 전공자가 훨씬 많다. 2016년 원자력산업회의가 전문학사 이상 핵산업계 종사자 3만912명의 전공을 분류한 것을 보면, 1위는 기계·기계설계 7122명(23.0%), 2위 전기·전자·계측제어 6818명(22.1%), 3위는 인문·사회과학 3565명(11.5%) 순서였다. 원자력·방사선 전공자는 4위로 2520명(8.2%)에 불과했다. 기본으로 핵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는 기계-발전기를 운영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는 매우 당연한 분포다. 이 기업체에는 인문사회를 전공한 관리직 비중도 상당하다. 당장 현 한수원 노조위원장도 경영학 박사학위 소지자다.

실제 발전소를 운영하는 인력 구성도 이러한데, 이를 감시하는 규제기관의 인력은 더욱 다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규제 과정에서 법률이나 시민 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원안위 구성에는 변호사 등 비원자력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도 현재 위원장은 원자력공학을 전공했지만, 이전 3명의 위원장은 모두 법학, 과학정책학, 물리학 전공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원안위에서 원자력 분야 규제 업무를 계속 담당했고,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을 공부한 현 원안위원장이 단지 학부 전공이 ‘사회복지학’이었다는 이유로 지적 받아야 하는지 의아하다.

오히려 현재 원안위의 문제는 “이해 충돌” 문제다. 현행 법률은 원안위 위원이 최근 3년 이내 원자력이용자의 사업에 관여하면 이를 결격 사유로 본다.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을 오히려 보호하는 “규제 포획”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현직 원자력공학자를 찾기 힘들다. 그동안 핵에너지 이용과 진흥이 뒤섞여 한솥밥을 먹어왔다. 결국 자유한국당조차 은퇴한 원자력공학자와 비원자력계 인사를 원안위 추천할 정도니 우리 현실이 얼마나 참담한지 되돌아봐야 한다.

국민 안전을 생각할 때 핵에너지 이용을 둘러싼 규제는 더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각종 납품 비리와 사고 은폐 등 그간 핵산업계 내부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공학자의 눈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이 접목돼야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와 핵에너지 규제에 전문성이 함께 필요하다. 또 사업자 편이 아니라, 국민 안전의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할 원자력공학자를 키워내는 노력도 이제 시작해야 한다. 수십 년 전에 졸업한 학부 전공이나 따지면서 원자력공학자를 괄시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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