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핵발전을 둘러싼 에너지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을 최우선 해야 하는 핵발전소를 설계·운영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기술자와 공학자가 필요하다. 이들의 노력 없이 핵발전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핵발전소를 비롯한 에너지정책을 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서다.
하지만 최근 핵산업계와 보수 언론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보면 과학기술자, 그 중에서도 원자력공학 전공자가 아니면 핵발전을 얘기할 자격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대목을 많이 본다. 한수원 노조는 지난달 원안위 위원들의 핵발전소를방문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원안위 위원들이 변호사, 환경운동가, 화학공학 교수, 지질환경과학 교수, 예방의학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며 원안위를 ‘원자력궁금위원회’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 보수 언론은 칼럼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이 원안위 위원장이 됐다며 누가 핵발전소 안전을 지키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 발전소를 운영하는 인력 구성도 이러한데, 이를 감시하는 규제기관의 인력은 더욱 다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규제 과정에서 법률이나 시민 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원안위 구성에는 변호사 등 비원자력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도 현재 위원장은 원자력공학을 전공했지만, 이전 3명의 위원장은 모두 법학, 과학정책학, 물리학 전공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원안위에서 원자력 분야 규제 업무를 계속 담당했고,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을 공부한 현 원안위원장이 단지 학부 전공이 ‘사회복지학’이었다는 이유로 지적 받아야 하는지 의아하다.
오히려 현재 원안위의 문제는 “이해 충돌” 문제다. 현행 법률은 원안위 위원이 최근 3년 이내 원자력이용자의 사업에 관여하면 이를 결격 사유로 본다.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을 오히려 보호하는 “규제 포획”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현직 원자력공학자를 찾기 힘들다. 그동안 핵에너지 이용과 진흥이 뒤섞여 한솥밥을 먹어왔다. 결국 자유한국당조차 은퇴한 원자력공학자와 비원자력계 인사를 원안위 추천할 정도니 우리 현실이 얼마나 참담한지 되돌아봐야 한다.
국민 안전을 생각할 때 핵에너지 이용을 둘러싼 규제는 더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각종 납품 비리와 사고 은폐 등 그간 핵산업계 내부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공학자의 눈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이 접목돼야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와 핵에너지 규제에 전문성이 함께 필요하다. 또 사업자 편이 아니라, 국민 안전의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할 원자력공학자를 키워내는 노력도 이제 시작해야 한다. 수십 년 전에 졸업한 학부 전공이나 따지면서 원자력공학자를 괄시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