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검색하면 두 종류의 기사가 뜬다. 하나는 올해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는 정부발 보도자료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사기”라는 장애계 목소리다. 진실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장애등급’이라는 껍데기만 사라질 뿐 장애인의 현실은 지금과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돼 근본적으로는 장애계의 비판이 옳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명령 1호’로 장애등급제 폐지를 선정하고, 당선 이후 실제 장애계와 민관협의체를 꾸려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했다. 그러나 사실상 형식적 논의 테이블에 불과했고, 복지부는 장애계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 안들을 독단으로 내놓으며 이를 추진했다. 결국 6등급으로 나뉜 장애등급은 중증(1~3급)과 경증(4~6급)으로 이원화했고, 복지부는 장애등급이 적용되는 장애인복지제도를 문재인 임기 내에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계획을 밝혔다. 이중 올해 7월에 장애등급이 없어지는 영역은 활동지원서비스 등과 같은 일상지원서비스에 한해서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만들어진 제도인데, 현재는 1~3급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7월부터 장애등급이 없어지면 신청은 모든 장애인이 가능하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될 새로운 판정체계인 종합조사도구에 따라 실제 몇 시간의 서비스 시간을 이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지난해 11월14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 국회 정문을 막아선 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 국회에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비마이너 제공
▲ 지난해 11월14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 국회 정문을 막아선 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 국회에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비마이너 제공

이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예고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뜯어보면 알 수 있다. 현재 활동지원 예산은 장애인복지 예산의 3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매우 크다. 활동지원 예산은 지난해 6900억원에서 올해 1조원으로 대폭 증액됐으나 실은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서비스 단가가 1만760원에서 1만2960원으로, 이용자 수가 7만1000명에서 8만1000명으로, 최중증장애인 활동지원에 가산급여가 690원에서 1000원으로 늘어난 것은 자연증가분일 따름이다. 장애인들이 그토록 요구하는 ‘활동지원 하루 24시간 지원’은 이번에도 없을뿐더러 이용시간은 109시간으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즉, 장애등급이 없어지면서 모든 장애인이 이를 신청해 이용할 것처럼 보이지만, 예산을 보면 현상 유지 수준이다. 장애인이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를 사기라고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게다가 활동지원시간을 결정하는 조사표를 개편하면서 시각장애인 같은 특정 장애 유형엔 불리해져, 일부 장애 유형은 오히려 시간이 삭감된다는 불안한 소문마저 돈다. 이에 일부 장애인단체는 장애 유형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예산 총량이 늘지 않는 한 이런 목소리는 ‘장애 유형별 싸움’을 부추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뇌병변장애인의 시간을 떼어서 시각장애인에게 주는 걸 누가 찬성할까?

따라서 결국 7월에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고 하나 실제 장애인의 삶은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활동지원시간도 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복지 자원은 여전히 부족하니 장애인은 거주시설 입소를 하나의 대안이라 믿으며 입소하고, 장애로 일할 수 없어 빈곤에 처해도 소득 여부와 상관없이 장애3급(경증)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연금은 받을 수 없다.

▲ 강혜민 비마이너 기자
▲ 강혜민 비마이너 기자
이러한 상황이니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과 큰 변화가 없는데 굳이 등급제를 폐지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등급 하락이 곧 서비스 탈락으로 이어졌던 장애등급제 폐지 싸움의 시작을 상기한다면, 등급이 없어졌다는 것(실은 6개의 등급이 중·경증이라는 2개의 등급으로 축소된 것이지만) 자체는 큰 변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것이 정말로 의미 있으려면 장애인복지 예산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즉 현재보다 5배는 더 증액돼야 한다. 장애등급제 폐지 싸움이 복지예산 확대 투쟁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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