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석방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가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촛불집회가 타오르던 광화문을 피해 2016년 11월19일 서울역 앞에서 ‘박 대통령 하야 반대’를 내걸고 처음 열린 태극기 집회가 2년 넘게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 점차 사그라들 것이라고 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태극기 집회는 촛불집회에 대항하는 ‘맞불집회’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2017년 4월29일 끝난 촛불집회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2년 넘게 끈질기게 이어온 ‘태극기 집회’ 생명력은?

▲ 한국일보 5일자 1면
▲ 한국일보 5일자 1면
한국일보가 끈질긴 ‘태극기 집회’의 지난 2년간 행적과 오늘의 모습을 5일자 1면과 9면에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한국일보는 1면에 ‘벌써 2년… 끈질기다 태극기 집회’란 제목의 머리기사로 이 문제를 다뤘다. 한국일보는 5일자 1면 기사에서 “집회 주축은 여전히 노인들이고 공감하기 힘든 허무맹랑하거나 과격한 연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분위기는 2년 전과 사뭇 달랐다. 초반기(2016년말)만 해도 집회를 취재하는 기자 또는 주변을 지나가는 청년들에게 욕설을 내뱉거나 폭행도 서슴지 않던 참가자들은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이 40% 후반으로 하락하고 김 위원장 연내 방남이 무산된 덕분인지 자신감에 찬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돈 받고 나온다는 일부 지적을 의식한 듯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70대 집회 참가자는 “우리가 매주 회비를 내고 있다”고 했다.

60·70 세대의 정치 해방구가 된 태극기 집회

한국일보는 태극기 집회가 초기에 핏발 선 모습에서 진화해 ‘60·70세대들의 정치적 해방구 역할을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국일보는 이를 5일자 9면에 ‘극렬 보수부터 보통 노인까지… 60·70 정치 해방구 분위기’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 “주말을 맞아 운동 삼아 나왔다는 이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그간 안부를 주고받는 이들 등 집회에 나온 목적과 경위는 저마다 달라”졌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만난 참가자 중엔 2년전 촛불집회 참가했다가 태극기 집회로 옮겨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60대인 그는 “나는 처음 촛불을 들었던 사람으로 그때는 대통령이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박 전 대통령이 돈 받은 거 없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맞불집회라는 급조된 양식으로 시작한 태극기 집회가 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진화해온 바탕엔 극우 유투버들이 크게 한몫 했다. 한국일보는 이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진보세력이 주도한 팟캐스트가 대안언론으로 주목받은 것와 유사하다”고 해석했다. 보수 인사들이 이를 모방해 유튜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서울도심 5곳 쪼개져 집회

한국일보는 5일자 9면 아래쪽에 ‘태극기집회 주도세력, 박사모→탄기국→새누리당→5대 단체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16년 11월19일 첫 집회 이후 2년여 동안 태극기 주도세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추적했다.

▲ 한국일보 5일자 9면 전면
▲ 한국일보 5일자 9면 전면

태극기 집회는 2016년 11월19일 박사모와 80여개 보수단체가 총동원령을 내려 서울역 앞에서 시작했지만 본격화한 건 정광용 박사모 회장 등이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을 결성해 한 달 뒤 12월24일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이끌면서부터다. 탄기국은 2017년 3월10일 이후 국민저항본부를 이름을 바꿨지만 2017년 4월17일 대통령 선거운동을 기점으로 갈라졌다. 국민저항본부는 새누리당이란 새 정당을 만들어 조원진 후보를 내세웠는데 대선자금을 둘러싼 갈등으로 당이 조 의원을 제명하면서 쪼개졌다. 이때 집회 주최세력은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를 만들어 지금도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 집회를 이어왔다.

제명된 조 의원은 대한애국당을 만들어 박근혜대통령1000만석방운동본부(석방본부)와 함께 서울역 앞에서 매주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국본과 석방본부(조원진 의원)에도 참여하지 않는 단체들도 있다. 매주 토요일 동화면세점 앞에선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일파만파)가 있고,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는 자유대연합이, 보신각 앞에는 박근혜대통령구명총연맹(구명총)이 있다. 일파만파는 육사 출신 김수열씨 등 군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자유대연합은 전 국방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이상진 박사가, 구명총은 전 박사모 부회장 신용표씨가 중심 인물이다.

한국일보 ‘더 확장’ 전망, 야당발 정개개편에 휩쓸릴 수도

한국일보는 태극기 집회의 미래를 ‘더 확장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일보는 “촛불집회로 정권이 교체됐다는 학습효과 때문에 文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태극기 집회는 더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2년 이상 이어온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보수세력의 확장을 예상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시위 관리방식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경찰은 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태극기 집회와 행진을 대부분 허용하고 있어 이전 정부 때처럼 강경하게 충돌하는 일이 줄었고, 때문에 광화문 일대가 주말마다 태극기 세력들의 주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태극기 세력은 대선 등 주요 선거를 기점으로 쪼개져 온 것도 주목해야 한다. 2016년 12월24일 대한문 앞에서 주최측 추산 100만명의 대규모 집회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태극기 집회는 모두 다섯 갈래로 쪼개졌다. 조원진 의원의 대한애국당원을 중심으로 석방본부가 주최하는 서울역 집회만 매주 수천명을 동원하는 반면 대부분 규모가 크게 줄었다. 일파만파가 이끄는 동화면세점 앞과 국본이 이끄는 대한문 앞 집회도 수백명 규모로 줄었고, 자유대연합의 교보문고 앞 집회와 구명총의 보신각 앞 집회는 적을 땐 100명도 안 된다. 숫자가 줄어든 만큼 깃발은 늘어났고, 확성기 소리는 더 커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대한애국당 등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정개개편 움직임이 본격화 되면서 태극기 집회세력도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보수 유튜버들의 허무맹랑한 발언이 권위주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6070세대엔 일부 먹힐 순 있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확장성을 만들어 내긴 어렵다. 한국일보가 언급한대로 지난달 15일 국본이 주최한 대한문 앞 태극기 집회에선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창중씨가 나와 “우리가 태극기집회를 계속 이어 왔기 때문에 김정은이 남한 땅을 못 밟은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위대한 세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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