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KBS 수신료 거부 운동과 지상파 중간광고 저지 등을 목표로 내걸고 ‘KBS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별위원회’(KBS 특위)를 발족했다. 언론계에선 한국당이 정치적 의도로 수신료를 빌미삼아 KBS를 길들이려 한다고 반박했다.

자유한국당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KBS 특위 연석회의로 오전 일정을 시작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KBS 특위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KBS 특위는 위원장인 박대출 의원을 비롯 김성태·박성중·송희경·윤상직·최연혜 의원 등 내부위원과 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이경환·이인철·김진욱 변호사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됐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 공정성을 뒤로 한 채 언론 자유를 악용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하는 KBS의 헌법파괴를 저지하고 국민이 수신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강제징수를 금지함으로써 KBS 편향성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특위 차원에서 ‘KBS 국민 모니터 팀’을 운영하는 등 KBS 보도·방송을 감시하고, SNS 등을 활용한 수신료 거부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도 밝혔다.

KBS는 이날 오후 한국당에 유감의 뜻을 담은 입장문을 전했다. KBS는 회의 발언 상당 부분이 사실관계가 틀렸다며 이를 바로잡는 한편 “제1야당이 잘못된 주장을 이어갈 경우 많은 국민에게 공영방송 제도 자체에 그릇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전했다. 또한 “수신료를 KBS가 직접 징수하면 지출비용만 늘고 징수율은 떨어져 공영방송 재원구조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법원도 지난 2008년 수신료 위탁징수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 4일 오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이 ‘KBS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별위원회’ 연석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 4일 오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이 ‘KBS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별위원회’ 연석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범 보수세력’ 동원한 KBS 압박 예고

한국당은 KBS를 겨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대출 의원과 강효상 의원이 지난달 각각 대표발의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전기료에 포함돼 징수하는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고, 수신료 납부 방식을 선택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같은 달 방송통신위원회가 도입을 결정한 지상파 중간광고 관련 사항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개정안도 발의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망라한 보수 세력이 KBS 압박에 총 동원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이날 특위 회의엔 자유연대, 시청료납부거부국민운동본부 등 보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한국당에 이른바 ‘광장 정치’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본인이 속한 단체를 ‘정통 우파 활동 결사체’로 규정한 김상진 자유연대 사무총장은 “광우병, 세월호, 촛불로 정권을 잡은 좌파집단과 문재인 정부가 광장정치를 편의에 따라 활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도 광장으로 나와야 시민사회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연대는 최근 ‘오늘밤 김제동’(12월4일)이 김수근 김정은 위인맞이환영단장 인터뷰를 내보낸 것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양승동 KBS 사장 등을 고발했다.

앞서 ‘오늘밤 김제동’ 제작진은 “12월4일 방송이 ‘김정은을 찬양했다’거나 ‘여과없이 내보냈다’는 보도는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스튜디오에 출연한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과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관련해 비판적 입장의 토론을 이어 갔다”며 “김정은 방남 환영 단체들을 다룬 기사를 모두 ‘찬양기사’라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KBS 편향성·방만경영 지적 타당성 있나

한국당은 이 밖에 KBS 편향성 사례로 1월1일 KBS 방송 가운데 △신년기획 ‘한반도의 미래를 묻다’에서 방송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천안함 관련 발언 △KBS 뉴스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신년사 과잉 보도 등을 주장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신년기획에서 정경두 장관이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사과 여부를 묻는 시민 패널 질문에 “우리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차원에서 일부 이해를 하면서 미래를 위해 나가야 될 부분이 있다”고 말한 점을 문제 삼은 것.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된 뒤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북한이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해명했다.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는 KBS 뿐 아니라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와 JTBC를 비롯한 종합편성채널, 종합일간지 등 주요 언론이 중점 보도하며 해석을 전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답 성격의 메시지를 SNS로 밝히며 수일 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다만 1일 방송사별로 ‘톱 아이템’이 다른 가운데, KBS ‘뉴스9’은 머릿기사를 시작으로 남북관계에 집중하는 리포트를 연이어 내보냈다는 차이가 있다.

수신료를 받는 KBS가 방만 경영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KBS는 연봉 1억원 넘는 직원이 전체 60%고 70%가 간부라고 한다. 친정권 인사인 김제동씨에게 7억원 출연료가 지급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연봉 1억원 이상 직원 60%’는 지난 2017년 11월 감사원이 공개한 ‘KBS 기관운영 감사 보고서’에 일부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지난 2008년, 2014년에 이어 당시에서 상위직급 정원 감축 필요성을 지적했다.

양승동 KBS 사장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상위직급 축소를 비롯한 조직개편 계획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KBS가 지난해 12월20일 공개한 경영혁신 방안을 보면, 상반기 중 350명 규모 상위직급 폐지 및 직급체계 개편, 보직자 수 축소, 20년 이상 근속 직원 특별명예퇴직 등이 담겼다.

다만 KBS는 나 원내대표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KBS는 이날 “전체 직원 중 연봉 1억언 이상 직원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46.8%였다”며 “70%가 간부라는 지적 또한 팀장급 이상으로 임용될 자격을 가진 직원 비율로, 실제 부장급 이상은 280명이며 전체 5%에 불과하다. 인사권 없는 팀장까지 포함하더라도 전체 16.3%”라고 해명했다.

김제동씨 출연료는 KBS가 이미 비공개 방침을 알린 사안이다. KBS는 이날 “(진행자 출연료는) KBS 감사실에서 면밀히 분석했으며 과거 출연료, 타사 제작비 현황 등을 고려해 판단했다”는 입장을 냈다.

▲ 전국언론노조가 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자유한국당 KBS특위 발족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 전국언론노조가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유한국당 KBS특위 발족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노조 “총선 앞두고 KBS 길들이려는 의도라면 실패할 것”

언론계에선 한국당의 KBS 특위 등 움직임을 ‘명백한 언론장악 시도’라 규정하며 즉각 반발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혹시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KBS를 길들이고 이를 통해 답보상태인 자칭 ‘보수애국세력’을 결집시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정치적 의도라면 분명 실패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경호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위원장은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논의에 임할 것이다. 하지만 어거지 내용을 근거로 KBS를 흔들려 하지 말라”며 “여당일 때는 (낙하산) 사장 임명하고 그게 안 되니 법안으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가져오는 버릇을 제발 버려라. 그러니까 실력이 안 늘고 민주당이 저렇게 못해도 (한국당) 지지율이 안 오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신료 분리징수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집권 여당 시절인 2014년 새누리당은 오히려 수신료 인상안을 단독 상정해 ‘날치기 시도’라 비판 받았다.

언론노조는 “한국당이 언론의 자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저널리즘 교과서 기본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신분이었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의원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최근 유죄 판결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언론노조는 “지금 자유한국당이 할 일은 수신료 거부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과거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방송법도 논의해야 그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당 KBS 특위는 문재인 정부 정책 대응을 목적으로 한 ‘5대 중점 대책 특별위원회’ 가운데 하나다. 5대 중점 특위는 △재앙적 탈원전 정책 저지 및 신한울 3·4·5호기 건설재개를 위한 특위 △소득주도성장 폐기 및 경제활력 되살리기 특위 △문재인 정부 사법장악 저지 및 사법부 독립수호 특위 △KBS의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위 △안전안심365 특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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