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자동차 회사 독일 폭스바겐은 “2026년 내연차 생산을 완전 중단한다”고 2018년 12월5일 공식 발표했다. 폭스바겐은 대신 전기차 생산에 주력할 계획이다. 자동차 판매량 세계 2위 일본 도요타 역시 2025년 모든 내연 차량의 생산을 중단하고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자동차 판매량 세계 3위 미국 GM 또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전기차 생산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판매량 세계 4위의 현대기아차도 수소차 제작에 뛰어들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만의 이슈는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온난화로 인한 지구 기온상승을 1.5도로 묶을 방안을 담은 특별보고서 ‘지구온난화 1.5℃’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제로(net-zero)배출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공급의 50~65%, 전력 생산의 70~85%를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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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의 아젠다는 ‘공존’이다. 공존을 위해선 우리가 사는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세계는 원자력(핵)발전소와 결별하고 있다. OECD 35개 국가 가운데 25곳에서 원전이 없거나 가동을 중단했거나 또는 원전을 특정 시점에 폐기하기로 발표한 상태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가 2009년 4기를 새로 짓겠다고 밝혔으나 2기는 경제성이 떨어져서 중단됐고 나머지 2기도 연기됐다. 오히려 기존의 11기에 대한 조기폐쇄를 결정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도 시간이 흐르며 조심스레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지만 에너지정책을 보면 2030년 기준 원전 비중이 사고 전에는 50%였던 것이 20%대로 크게 떨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원전이 많은 국가인 프랑스 역시 지난해 말 마크롱 대통령이 시일을 늦추더라도 원전을 20% 감축하는 공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스웨덴은 204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생산이 목표라고 밝혔다. 신규 원전의 건설 계획은 당연히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탈원전’은 세계적 흐름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원전마피아’들의 주장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해 대만의 ‘탈원전’ 국민투표다. 11월24일 대만은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날 석탄 화력발전소 생산량을 매년 1%식 줄이는 안이 총 유권자 대비 찬성률 40.27%로 통과됐다. ‘핵발전소(원전) 시설은 2025년까지 모두 중단돼야 한다’는 전기법 95조1항의 폐지안도 총 유권자 대비 찬성률 29.84%로 통과됐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이 대만의 ‘탈핵’ 기조가 폐기됐다고 대서특필했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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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한 대만대표부 공보관은 JTBC와 인터뷰에서 “2025년까지 모든 핵 발전 중단이란 조항에 대해 폐지한다는 것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핵 없는 나라로 나가는 것은 계속된 목표”라고 밝혔다. 대만 국민투표 문항을 보면 탈 원전 정책의 중단 여부를 물은 게 아니었다. 더욱이 대만의 원전들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원전의 수명이 2025년 끝이 난다. 수명연장 가동을 위해서는 안전성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수명이 끝나기 5년 전에 제출해야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2022년까지 운영허가를 받은 월성원전 1호기를 폐쇄하고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 신규원전 4기 사업을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유럽, 미국, 중국 전 사업장(제조공장, 빌딩, 사무실 포함)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국내에선 수원, 화성, 평택 사업장 내 주차장, 건물, 옥상 등에 태양광, 지열 발전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녹색당은 신년 논평에서 “화석연료의 대안이 방사능이 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세상은 달라졌다.

지난해 국회 산업위 국정감사에서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은 “태양광 패널은 동일 에너지를 생산하는 핵발전소보다 300배 이상 독성폐기물을 발생 시킨다”는 미국 친원전 단체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10만년 이상 방사선을 방출하는 고준위 핵폐기물과 전선 연결에 사용된 극소량의 납을 제거하면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거의 전무한 태양광 폐패널을 동일한 독성 폐기물로 볼 수 없어서다. 하지만 언론이 최 의원의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하며 친원전 세력에게 유리한 ‘가짜뉴스’는 확산됐다.

언론의 원전보도는 때론 원자력을 위한 선전에 가까웠다. “국민71%가 ‘원전 찬성’”. 지난해 8월17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제목이다. 한국원자력학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썼는데, 당시 문항은 “귀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전기 생산 수단으로 원자력발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폭염으로 에어컨이 간절했던 시기 ‘전기 생산 수단’을 강조한 대목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리서치는 ‘전기 생산에 가장 적합한 발전원’을 묻기도 했다. 이 질문에 44.9%가 태양광을 선택했다. 원자력을 선택한 응답은 29.9%였다. 방사능 안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만약 이 대목을 기사의 리드로 뽑았다면 어땠을까. “원자력발전 원하는 국민은 10명 중 3명뿐”이란 기사를 쓸 수도 있었다. 이처럼 언론의 관점은 프레임을 정하고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올해는 부디 스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에서 교훈을 얻은 언론인들이 늘어나 왜곡보도가 사라지길 바란다. 광고·협찬으로 무장한 친원전 세력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는 언론사를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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