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언론계 전반의 현황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매체인 ‘미디어오늘’에 기고하는 글이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KBS 탐사보도부가 ‘뉴스9’에서 전한 ‘독방거래 등 교정 비리 연속보도’의 내용을 일일이 동어반복한다거나 보도 성과만 자화자찬하다가 글을 끝마치는 건 지면 낭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면구스럽기도 하거니와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 소감에나 적합한 내용이다.

그래서 발주처(?)인 미디어오늘의 당초 구상과 별도로 이번 보도가 취재기자에게 남긴 어떤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분명 ‘탐사 기획 보도의 수난시대’라는 것.

이번 보도의 파장은 ‘있으면서도 없었고 없으면서도 있었다.’ 쑥스럽지만 일단 언급하지 않겠다고 한 자화자찬(?)을 하면 이렇다. 교정당국에 돈 로비를 하면 여러 명이 함께 방을 쓰는 ‘혼거실’에서 ‘1인실’로 옮기는 이른바 ‘독방 거래’는 물론이고, 다른 교도소로 이동하는 ‘이감’, 석방을 앞당기는 ‘가석방 거래’까지 모든 게 가능했다. 이번 보도의 핵심 내용이다.

브로커로 지목된 김상채 변호사는 보도가 나간 뒤 바른미래당의 모든 당직에서 해촉됐다. 검찰은 중단했던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내부 감찰을 진행하면서 제도 개선을 마련 중이다. 이를테면 교도소장의 결정 권한을 줄이는 방식 등이다. KBS 보도가 만들어낸 성과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 젊은 층 대다수가 뉴스 소비처로 이용하는 네이버 유통망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네이버 특유의 보수적 편집 방향 때문일까. 이념의 보수성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뭔가 고발 성격이 강한 보도는 크게 다루지 않는, 그래서 더 정확하게 ‘보신주의’ 또는 ‘안전주의’ 편집이라고 명명할 포털의 방향성은 이번 보도의 유통 범위를 매우 축소시켰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이틀 연속 ‘KBS 뉴스9’ 톱뉴스였던 이번 보도는 네이버에서만큼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물론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국내 탐사 기획 보도물이 안고 있는 근원적 고민에 가깝다. 매달 ‘이달의 기자상’에 출품되는 각종 기획 보도물 목록을 살펴보면, 정말이지 빼어난 탐사 기획물이 수두룩하다. 취재 역량 측면에서 대한민국 탐사 기자들이 다른 선진국 기자들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그러나 KBS 탐사보도부에 속한 나에게조차 출품작 가운데 절반은 그런 보도가 언제 있었나 싶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다.

지금 언론사들은 역설적 상황에 봉착했다. 언론사가 난립하고 각종 자잘한 발생 뉴스가 그날 다 소화되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버린다. 그런 시대를 사는 언론사들은 탐사 기획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한다. 당연히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탐사 기획은 이제 블루오션이 아닌 레드오션이 돼 버렸다. 발생 뉴스가 아니라서 다른 언론사의 적극적 인용 보도가 뒤따르지 않는다. 포털에서 기사가 사라지는 순간 그렇게 수개월 공들인 탐사 보도의 존재감은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에서나 사후적으로 확인될 따름이다. 바야흐로 탐사 기획 보도의 수난시대다.

▲ 이재석 KBS 탐사보도부 기자. 사진=이재석 기자 제공
▲ 이재석 KBS 탐사보도부 기자. 사진=이재석 기자 제공
그렇다고 탐사 기획을 손놓아 버린 채 모두가 발생 뉴스로만 달려가서도 안 된다. 대안이 필요하다.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는 대안을 여기에 적는 건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파격적 상상’을 한다. KBS에서 주간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이다. 국내 언론사들의 좋은 탐사 기획물을 매주 소개해주고 응원하는 프로그램 말이다. 기사가 좋다면 누구든 출연할 수 있다. 조선일보 기자든 한겨레 기자든 다른 방송사 기자도 상관없다. 그런 프로그램이야말로 대한민국 탐사 보도의 불씨를 살려가면서 탐사 보도 기자들 사이 ‘연대의 장(場)’을 마련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공영방송 KBS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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