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현장 스태프들이 장시간 노동·저임금에 불안한 지위까지 감당하는 건 널리 알려졌다. 이런 스태프들을 태우고 현장에서 필요한 장비 등을 운반하는 차량의 운전노동자(기장)의 실태는 어떨까. 미디어오늘은 드라마 현장에서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운전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었다.

드라마 제작현장에는 봉고차, 스태프버스, 트럭 등 크게 세 종류의 차량이 정기적으로 필요하다. 봉고차는 다시 3가지로 나뉜다. 연출감독을 태우는 연출봉고, 이른바 ‘연봉’은 새벽에 연출감독 집 앞으로 가서 현장까지 이동한다. 카메라 장비를 싣고 카메라 감독과 조수를 태우는 차를 ‘카봉(카메라봉고)’, 제작PD를 태우고 각종 물품을 실을 뿐 아니라 잔심부름까지 담당하는 차를 ‘제봉(제작봉고)’으로 부른다. 봉고차는 보통 용역회사(렌트카회사)가 방송사와 계약을 맺는다.

스태프버스는 보통 오전 6시에 여의도나 일산에서 모여 드라마 스태프들을 태우고 드라마 제작현장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모였던 장소로 와준다. 낮에 현장을 옮기면 역시 같이 이동한다. 트럭은 1톤트럭과 2.5톤트럭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의상을 싣고, 후자는 드라마에 필요한 소품을 싣는다. 버스와 트럭은 용역회사(운수회사·통운회사)가 보통 제작사와 계약을 맺는다.

보통 용역회사가 방송사·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매출의 일부를 수수료·지입료 등의 명목으로 떼어간다. 7년차 봉고차 운전노동자 A씨는 “(드라마를 총괄하는 연출을 태우는) ‘연봉’은 타이틀이 있어서 월 330~340만원 정도 받고 ‘제봉’은 모든 잡심부름을 다해 많이 움직이니까 비슷하게 받는다”며 “통상 ‘카봉’은 20만원정도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 하루 20시간까지 지휘·감독 하에 있는 현실을 보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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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제작사 간 계약에서 기장들은 배제됐다. 기장 A씨는 “회사랑 계약서 쓴 적 없고 예전부터 그랬다”며 “우린 단가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계약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면 대인·대물(상대방) 보상은 보험회사에서 부담하지만 렌트카라서 봉고차는 기장이 자비로 고쳐야 한다. 차량의 실질 소유주는 기장이라 차 값을 부담하지만 명의는 렌트카회사다. 이를 지입차라고 하는데 지입료 명목으로 기장들에게 월 10만원이상을 떼어간다. 지입차 관행은 불법이다.

이 뿐만 아니다. 소득세, 제작사에서 일을 따온 대가로 볼 수 있는 수수료 약 15%까지 합하면 보통 월 60만~70만원을 회사에서 떼어간다는 게 A씨 설명이다. 그는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조치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며 “업체가 많다보니 몇 년 전에 비해 단가는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버스 역시 10개 넘는 업체가 출혈경쟁을 벌여 단가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18년차 스태프버스 운전노동자 B씨는 “새차를 구입했기에 하루 35만원을 받고 기름값은 이 안에 포함돼 있다”며 “35만원도 못 받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역시 지입차 관행이 있어 월 40만원정도를 지입료로 회사에 납부한다. 버스 가격은 2억원이 넘는데 이 중 일부를 인도금으로 내고 들어가 월 200만원 안팎의 차 할부금을 기장들이 부담해야 한다.

기장들이 모여서 단체로 목소리를 내긴 쉽지 않다. B씨는 “(봉고·트럭은) 현장 어디에나 세울 수 있지만 버스는 스태프들 태워주고 주차가 가능한 곳으로 따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다른 기장들과) 현장에서 교류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17년 경력 트럭 운전노동자 C씨는 “우리가 몇 번 모여서 ‘으쌰으쌰’한 적이 있는데 시끄럽게 했다고 방송사에서 출입금지 시키고 그랬다”며 “함께 문제제기해야 바뀔 텐데 하루라도 일을 쉴 수 없는 분들도 있으니 단체로 협상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송계 일을 하다 부족하면 다른 일로 벌이를 보충해야 한다. B씨는 “다른 쪽에서 일하면 하루에 100만원도 받는데 방송 쪽은 기름값 다 받아도 70만원을 넘지 않지만 노동시간은 더 길다”고 말했다. C씨 역시 “24시간 콜(외부 일)을 받으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만 일해도 25만원까지 벌지만 방송 일을 하면 24시간을 해도 10만원 조금 넘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예 방송계를 떠나기는 쉽지 않다. 화물 트럭은 영업용 번호판을 구입해야 한다. B씨는 “1톤 트럭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번호판을 300만원 주고 샀는데 지금은 2500만원 정도고 2.5톤 트럭 번호판은 3000만원정도”라며 “가격이 높다는 건 그만큼 트럭 영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방송계가 짜더라도 하루 벌이가 아쉬운 이들이 쉽게 떠나기 어렵다는 소리다. 떠날 수 없을 때 협상력은 크게 떨어진다.

트럭 역시 차 보험료나 수리비, 차 값과 영업용 번호판까지 모두 기장들 부담이다. 통운회사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는 계속 오르고 있다. C씨는 “10년 전 수수료가 5%쯤 됐는데 지금은 12~15%까지 왔다”며 “최근 식대를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렸는데 그게 유일한 상승분”이라고 말했다.

봉고와 버스는 프로그램 단위로 제작사와 계약을 맺지만 트럭의 경우 두 개의 통운회사가 KBS와 MBC와 연 단위 계약하고 매년 방송사를 서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단가를 낮추거나 기장들에게 떼어가는 수수료를 높인다.

SBS는 통운회사 소속이지만 자신들과 일하는 기장들을 월급제로 수익을 보장한다. 1톤 트럭은 300만원이 조금 안되고 2.5톤 트럭은 350만원이 좀 안 되지만 기장 입장에선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언제까지 쉬게 될까’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SBS와 일하는 걸 선호한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열악한 기장들의 현실은 현장 전체의 위험으로 커질 수 있다. A씨는 “운전하는 사람들이니까 잠은 좀 재워야 하는데 70~80%는 졸면서 다닐 거다”라며 “항상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낮에 쪽잠을 잔다지만 중간에 다른 현장에 이동하거나 스태프들이 차에 드나들어 푹 자는 건 불가능하다. 힘든 업종으로 알려지면서 젊은 층의 유입은 끊겼다. 보통 기장들은 60대다.

▲ 특수차량으로 분류되는 발전차의 표준단가표(왼쪽), 표준계약서. 사진=방송스태프지부 제공
▲ 특수차량으로 분류되는 발전차의 표준단가표(왼쪽), 표준계약서. 사진=방송스태프지부 제공

방송사·제작사들이 업체들을 경쟁 입찰하게 하는 구조지만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요구다. 특수차량으로 분류돼 있고 업체 소속이 아니라 차이가 있지만 발전차의 경우 표준계약서와 표준단가표가 있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과거 한국발전차연합회에서 일하며 표준단가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고 3년간 싸워 제작사에 이를 관철한 경험이 있다. 물론 현재 기장들이 회사 소속이고 지입차 관행이 불법이라 발전차 사례가 직접적인 모델이 될 순 없다.

김두영 지부장은 “현재는 단가 책정 기준이 없어서 기장들이 소위 말빨로 따내고 있다.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 방송사·제작사에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노조에서 버스분과·봉고차분과·트럭분과를 만들었고 각 당사자들이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 인상분을 낮추거나 물가인상분의 몇%라도 임금에 반영하게 해달라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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