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보도 무조건 1면에 실으라는 與…세계에서 유례없는 법안”

지난해 12월28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제목이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29일 대표발의 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정정보도를 할 경우 보도채널의 경우 프로그램 시작 시, 신문의 경우 첫 지면에 정정보도문을 내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개정안을 두고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자유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법안으로 언론의 자율성과 편집권을 훼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신문협회는 “정정보도문 게재를 1면으로 강제하는 해외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며 지난달 1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개정안의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 2018년 12월28일자 동아일보 기사.
▲ 2018년 12월28일자 동아일보 기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으로 현재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광온 의원은 왜 이런 법안을 냈을까. 그는 “잘못된 사실을 전한 기사는 대서특필되어 이미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명예훼손과 인격권의 침해가 발생했음에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정정보도는 가급적 작은 지면으로 게재하거나 또는 해당 방송의 종료 직전에 방송되는 경우가 많아 대다수의 독자나 시청자가 정정보도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허위보도 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정보도문을 보다 실효성 있는 방법으로 일반사람들이 널리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개정 취지를 밝혔다.

실제로 오보가 났을 경우 동일지면에서 정정보도문이 나오기는 하지만 동일 크기로 정정보도문을 내는 경우는 없다. 언론중재위원회가 펴낸 2017년 언론관련 판결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정정보도문 길이는 300자 이하 25.7%, 400자~500자 24.3%, 300자~400자 23%였다. 원고지 2.5매 분량인 500자 이하 정정보도문이 73%였다. 2016년 같은 보고서에서는 정정보도문의 51.2%가 300자 이하였고, 300자~400자가 20.2%였다. 71.4%가 원고지 2장 이하 분량이었다. 동일지면에서 정정보도문을 내더라도 오보를 바로잡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이와 관련 언론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박광온 의원의 법안이 무리한 면은 있다. 하지만 최근 법원에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첫머리에 배치해야 한다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오보에 따른 피해구제효과가 실질적으로 있으려면 무기대등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법원의 판결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기대등의 원칙이란 재판에 나서는 양쪽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법적 다툼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정정보도문을 주요 지면이나 뉴스 첫머리에 배치해야만 오보로 인한 피해와 대등하게 구제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례로 2014년 2월24일자 동아일보는 유우성씨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한 최초 신고자 인터뷰를 담은 “유씨 아버지가 ‘아들 北보위부 일 한다’ 말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당시 1심 형사재판에서 유씨가 간첩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등장한 보도였기 때문에 파장은 컸다. 하지만 오보였다. 2017년 재판부는 동아일보에 정정보도와 함께 1000만 원 손해배상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동아일보가 (최초 신고자의 언급이) 진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조사했거나 적어도 위 언급을 신빙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근거를 확인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 2017년 3월6일자 동아일보 12면.
▲ 2017년 3월6일자 동아일보 12면.
동아일보는 2015년 대법원에서 유씨가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침묵하다 2017년 3월6일자 지면에 “유우성이 간첩행위를 하였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간첩 혐의에 대하여는 무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는 짤막한 정정보도문을 냈다. 12면 구석에 처박힌, 짧은 정정보도문이었다.

현행법만 잘 이용해도 언론보도에 따른 피해구제는 가능하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언론계가 오보의 ‘무게’를 느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언론계는 박 의원의 법안이 왜 등장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사의 정정보도문이 어떠했는지, 오보에 대한 피해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었는지 성찰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언론이 달라진다면 박 의원의 개정안은 자연스레 폐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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