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가 역대 신년사와 비교해 긍정적인 내용이 월등히 늘었다. 평화와 화해, 번영 같은 단어 사용 횟수는 많아지고 전쟁과 핵 같은 단어는 크게 줄었다.

‘평화’라는 단어는 지난 2015~2017년까지 각각 6번, 9번, 6번 등장했지만 지난해 10번으로 늘었고 올해 신년사에는 무려 25회 언급됐다. ‘화해’라는 단어 역시 2015년 1회, 2016년 2회, 2017년 1회, 2018년 3회였다가 올해 7회로 늘었다.

특히 올해 신년사에서 ‘비핵화’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9월 평양공동선언 전문에서도 포함된 적이 있다.

싱가포르 합의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체제 안전보장을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단호하고 확고하게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였다”등 모두 3번에 걸쳐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평양 공동선언에서는“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문구로 반영됐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6.12조미공동성명에서 천명한대로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가려는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불변한 립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 신년사에서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신년사가 북한의 정책 방향을 밝히고 인민에게 정책 방향을 관철시키는 공식 발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번 등장하긴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핵’이라는 키워드는 올해 신년사에서 사라졌다. 핵은 2015년 4회, 2016년 4회, 2017년 0회, 2018년 5회 등장했다.

전쟁이라는 키워드도 대푹 줄어들었다. 2015년 9회, 2016년 11회, 2017년 9회, 2018년 12회 등장했던 것이 올해엔 3회로 줄어들었다. 올해 신년사에 언급한 전쟁이라는 단어는 평화의 대칭 개념으로 사용됐다.

“조선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열어놓으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담아 채택된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북남군사분야합의서는 북남사이에 무력에 의한 동족상쟁을 종식시킬것을 확약한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으로서 참으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 “북과 남이 평화번영의 길로 나가기로 확약한 이상 조선반도정세긴장의 근원으로 되고있는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여야 한다는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등이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2015년 신년사에 쓰였던 전쟁은 “지금 남조선에서 해마다 그칠 사이없이 벌어지는 대규모전쟁연습”, “침략적인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핵전쟁연습에 매달리는것은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위험천만한 행위”, “남조선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리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환경을 마련하는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려 하여서는 언제 가도 조국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수 없으며 대결과 전쟁밖에 가져올것이 없다” 등 위협적인 내용으로 쓰였다.

‘경제’와 ‘번영’이라는 단어도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경제는 2015년 16회, 2016년 17회, 2017년 16회, 2018년 21회 등장했다가 올해 신년사에서 38회로 늘었다.

2019년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자립경제”, “인민경제활성화”라는 단어를 대폭 썼다. 지난 2017년부터 추진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신년사에서도 ‘경제’라는 말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번영’이라는 단어도 늘었다. 2015~2018년까지 한자릿 수에 그쳤던 번영은 올해 10회로 늘었다. 번영이라는 단어는 지난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양 정상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민족적 화해와 협력, 확고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쓰였고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강조하는 단어로 쓰였다.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는 줄어들었다. 2015년 18회, 2016년 27회, 2017년 18회, 2018년 12회 쓰였던 통일은 올해 8회에 그쳤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던 2017년 신년사에서는 조국통일 대 반외세통일세력의 구도로 나눠 조국통일위업을 달성하자는 내용이 많이 등장했는데 올해 신년사에서는 평화와 번영에 초점을 맞추고 통일이라는 단어 사용은 최소한도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강조해왔던 민족이라는 단어도 2015년 24회, 2016년 22회, 2017년 24회, 2018년 19회 2019년 18회로 줄어들었다.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도 파격적으로 변했다. 보통 북한 지도자의 신년사 발표는 인민복을 입고 서서 노동당 청사에서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반면 올해 김 위원장은 집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검은색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소파에 앉아 종이 원고를 들고 신년사를 발표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단상에 서서 다소 딱딱하고 강한 톤으로 신년사를 낭독했다면 올해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액자가 걸려있는 서양식의 화려한 서재에서 매우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신년사를 낭독하는 파격을 보여줬다”며 “김 위원장이 이처럼 올해 완전히 새로운 신년사 발표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가 작년의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정 본부장은 “올해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경제와 대남 및 대미 관계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는 김 위원장의 작년과 올해 최고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며, 김 위원장이 앞으로도 계속 경제발전과 대남, 대미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신년사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미국이 세계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수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게 될수도 있다”라는 문구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미국에서 상응조치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소한의 경고성 발언으로 그쳤다는 점에서 북미협상 재개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본부장은 “북한이 이미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카드를 제시한 상황에서 북한에게 또 다른 중요한 추가 카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추진보다 김 위원장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 카드에 대한 한미의 ‘상응조치’ 카드를 신속히 마련해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만약 북한의 ‘영변핵시설 영구폐기’에 대한 한미의 상응조치 카드가 마련된다면 이후 김 위원장의 답방이나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북한에게 제2단계, 제3단계의 비핵화 조치도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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