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시절 한 밤의 경찰서 텔레비전으로 천안함 사건을 접했다. 이튿날 새벽차를 타고 평택 해군2함대 정문에 도착했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010년 3월 27일, 어스름한 그 새벽의 군 부대 정문 앞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경험이 없던 나는 무슨 취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마침 한 방송사에서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한 팀이 왔다. 그들은 익숙한 듯 취재를 준비했다. 촬영기자는 주차장 쪽을 바라보며 촬영 장비를 들었고, 취재기자는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오는 방향에 서 있었다. 

그렇게 각자 자리를 잡고 10여분이 지나자 사람들을 태운 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문으로 가는 동선에 취재기자가 따라붙으며 “가족이신가요?”, “심정이 어떠시죠?”라고 물었다. 그들은 인터뷰를 피하며 황급히 부대 정문으로 진입했다. 촬영기자가 다음 번에 더 제대로 따라붙어야 한다고 언질을 했고, 취재기자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취재는 반복됐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땐 이 광경을 목도하며 ‘저렇게 취재를 하는 거였구나’라고 여겼다. 그 취재 현장에서 한 달간 나 역시 유가족과 동료 장병에게 무례하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기자 중 하나였다.

▲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강릉시 경포의 아라레이크 펜션 사고 현장에 지난해 12월18일 밤 취재진이 모여 있다. 경찰이 현장 감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강릉시 경포의 아라레이크 펜션 사고 현장에 지난해 12월18일 밤 취재진이 모여 있다. 경찰이 현장 감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피해자를 상대로 한 무리한 취재는 언론의 오래된 취재 관행이다. 사실 피해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언론은 질문하려 달려든다. “심정이 어떠냐”는 검찰청이나 경찰서에 출석하는 피의자나 참고인을 대상으로 언론이 던지는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다. 피해자든 아니든 취재 상대 상황을 배려하는 취재 태도가 절실하지만, 그런 배려를 하다간 현장에선 취재를 놓치기 일쑤다. 어쩌면 언론의 취재 행태 자체가 기사감이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은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자식의 모친 자택을 에워싸고 현관문에 귀를 대며 취재하는 언론의 행태를 기사화했다. 누구에게든 이런 취재는 인권 침해였지만, 언론계 내부에 자성의 목소리는 미약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에 경종이 울렸지만, 이런 행태가 사라지진 않았다. 2017년 말에 발생한 제천 화재 사건, 최근 강릉 펜션 가스 유출 사건에서도 유가족과 생존자, 지인들을 향한 무리한 취재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잘못된 취재 관행은 왜 반복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개인 기자들이 잘못된 취재 행위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기보단 오히려 취재 결과물이란 작은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이 그렇듯 언론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자초하고 저널리즘이 공멸하는 상황이어도 개개인은 작은 이득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그런데 이런 취재로 얻은 작은 결과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저널리즘의 성취는 대개 비극에서 시작되지만, 비극의 즉자적인 반응에서 오진 않았다. 세심한 관찰로 피해자의 아픔을 살피고 비극을 만든 구조적 문제를 파고드는 보도가 반향을 일으키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갔다. 2018년 관훈언론상을 수상한 서울신문의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과 한겨레신문의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같은 보도가 이에 해당된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또 다른 언론의 안타까운 관행은 비극이 발생해야 취재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모든 비극에는 징후가 있는데도 언론은 비극에만 관심을 갖는다. 누군가 죽어야 세상이 바뀐단 인식이 굳어질까 우려스럽다. 

쟁의행위에 나섰다가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다 한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랑 달라진 상황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무슨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준비했나요? 혹시 누가 죽었나요?”

언론의 이런 행태들을 접하다 보면 취재 이전에 감수성을 키우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든다. 그 시작은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고, 취재 결과물보다 취재 목적이 무엇인지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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