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출범한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약자·소수자와 관련한 심의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상현 위원장은 취임 때부터 방통심의위가 ‘정치 심의’를 지양하고 ‘시청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성평등과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제재 건수는 2015년 9건, 2016년 13건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37건으로 늘었다. 4기 방통심의위의 여성 위원은 3명으로 9명의 위원 모두 남성이었던 3기 때보다 구성도 개선됐다.

올해 방통심의위는 홈쇼핑과 경제방송 아파트 분양소식 보도 등 광고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홈쇼핑 채널들은 2012년 이후 6년 만에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방송사 최고수준의 징계인 ‘과징금 징계’를 받았다.

통신심의에선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결정이 눈에 띄었다. 한국당이 정당 명예훼손을 이유로 200여건의 심의 민원을 넣었으나 정당이 공적 기구고 표현의 자유 위축을 고려해 명백하게 허위라는 점이 드러날 경우만 제한적으로 심의하겠다고 결정했다. 경찰이 ‘문재인 치매설’을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비롯해 16건의 콘텐츠 삭제를 요청했으나 이 역시 제재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올해 기억할만한 10개의 심의를 정리했다. 

① 피해자와 소수자 배려 없었던 MBC ‘전참시’

방통심의위는 지난 5월과 10월 각각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 에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와 프로그램 중지’,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다.

MBC 전참시는 지난 5월5일 방영분에서 “[속보] 이영자 어묵 먹다 말고 충격 고백”이라는 자막을 합성한 뉴스 장면 세 컷을 방영했다. 뉴스 장면 세 컷 가운데 두 컷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전하는 뉴스 화면으로 확인됐다. ‘어묵’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사용됐다. 

지난 7월7일 방영분에서는 배우 신현준씨가 자신의 출연작인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발달장애인 주인공을 재연했고 출연자들이 즐거워하며 웃는 모습이 방송됐다. 발달장애인을 희화화한 대목이었다.

▲ 사진= MBC 전지적 참견시점 화면 갈무리
▲ 사진= MBC 전지적 참견시점 화면 갈무리

당시 방통심의위는 여야를 불문하고 두 심의안건 모두 문제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조롱 방영분을 두고 허미숙 소위원장은 “유가족과 희생자에 모욕감을 줬다. 방송사상 최악의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발달장애인 희화화 방영분을 두고 윤정주 위원은 “전참시가 이미 세월호 조롱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았음에도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한편 최승호 MBC 사장은 세월호 조롱 방영분에 방송 최고수준 징계인 ‘과징금 징계’가 검토되자 심의위원에게 전화해 “징계 수위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② 영수증이 가짜라고? 홈쇼핑 채널 6년 만에 과징금

롯데홈쇼핑과 GS SHOP, CJ오쇼핑 등 3곳은 지난 4월9일 밥솥 허위·과장 광고로 3000만원 ‘과징금 징계’를 받았다. 과징금 징계는 방송법상 최고수준의 징계다. 소비자를 기만한 홈쇼핑 채널에 과징금 징계가 의결된 건 지난 2012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었다.

▲ 사진= GS SHOP, 롯데홈쇼핑 방송 화면 갈무리
▲ 사진= GS SHOP, 롯데홈쇼핑 방송 화면 갈무리

이들 홈쇼핑은 ‘쿠쿠밥솥’ 판매방송을 하는 과정에서 백화점 영수증을 보여주며 “백화점에서 60만원에 가까운 동일제품을 이 조건에 오늘” “백화점가 대비 무려 22만 원을 아껴가시는” 등의 표현을 썼다. 그러나 이 영수증은 실제로 제품을 샀을 때 나오는 영수증이 아니었다.

당시 광고심의소위는 “매출을 위해 시청자를 기만·오인케 하는 내용을 방송한 것은 방송사의 공적 책임을 저버리는 몰지각한 행태로 엄중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한 홈쇼핑 관계자는 “방통심의위의 달라진 스탠스에 당황스럽다. 이전보다 굉장히 달라진 것 같다. 이 정도의 수위는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③ 피해자 목소리는 안 듣고 ‘가해자’ 목소리만 청취한 SBS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논란을 다룬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지난 6월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김어준씨가 지인 정봉주씨의 입장에서 방송을 사유화했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 사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화면 갈무리
▲ 사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화면 갈무리

앞서 김어준씨는 3월22일 방영분에서 정씨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당일 사건 추정 시간대인 오후 1~2시 정씨의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서울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다는 정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일 정 씨가 오후 늦게 호텔에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SBS 방송 내용은 사실상 오보가 됐다. 당시 심영섭 심의위원은 “피해 여성에(반론을 할 수 있는)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④ TV조선 풍계리 취재비 요구 단독기사는 오보?

TV조선은 지난 5월18일 ‘뉴스7’에서 북한이 풍계리 취재 비용으로 외신기자들에게 1인당 1만달러(약 1100만원) 요구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러나 외신기자들이 이를 부정하면서 오보 논란이 불거졌다. SBS와 JTBC, 한겨레 등 국내 언론은 TV조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직접 나서 해당 보도가 오보라고 지적했다.

당시 방통심의위에 오보가 아니라며 ‘의견진술’하러 나온 강상구 TV조선 정치부장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음성파일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TV조선은 법정제재를 받고 심의 결과에 대해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각됐다. 당시 TV조선은 심의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취재원 보호와 언론보도 윤리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 사진= 지난 5월19일 오보 논란을 빚은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 사진= 지난 5월19일 오보 논란을 빚은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⑤ 여성 출연자 술 따르게 한 CJ ENM

CJ ENM ‘짠내투어’가 중징계를 받았다. 방통심의위는 남녀 출연자들이 식사하면서 잔을 비운 남성 진행자 다섯 명에게 여성 진행자가 마음에 드는 남성을 골라 술을 따르게 하는 장면을 내보낸 CJ ENM 채널들에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 내용은 방통심의위에 안건으로 올라오기에 앞서 사내 모니터링 결과 문제라고 지적됐지만, 제작진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성평등 감수성’의 부재를 지적하며 tvN과 OtvN에는 법정제재인 ‘경고’를, 과거 유사한 사안의 제재 내역이 있고 청소년 시간대에 방송을 내보낸 XtvN에는 ‘관계자 징계’를 결정했다.

▲ 지난 8월18일 방영된 tVN 짠내투어에서 승리가 세정에게 호감인 사람에게 맥주를 따라달라고 하고 있다. 사진= 짠내투어 화면 갈무리
▲ 지난 8월18일 방영된 tVN 짠내투어에서 승리가 세정에게 호감인 사람에게 맥주를 따라달라고 하고 있다. 사진= 짠내투어 화면 갈무리

⑥ 세월호 의혹 보도도 하면 안 됩니까?

‘노회찬 타살설’을 보도한 MBN이 법정제재를 받았다. MBN은 노회찬 의원이 숨진 바로 다음 날 타살이 의심된다는 보도를 했다. 이날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 종합일간지 등 주요언론에서는 노회찬 타살설을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MBN 복수의 기자들은 내부에서조차 이 기사를 쓰는 것을 두고 보도원칙에 맞는지 문제 제기했다고 전했다. 고인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MBN지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MBN지부는 “MBN 보도국의 뉴스 편성 기준이 ‘오로지 시청률’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에 의견진술 차 출석한 정창원 MBN 사회부장은 “천안함, 세월호 의혹 보도도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이에 이소영 심의위원은 “가짜뉴스 확산에 동참하는 전형적인 예다. 철저하게 검증 절차를 거친 후 보도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 지난 7월24일 방송돼 논란을 빚은 노회찬 타살설 보도. 사진= MBN 뉴스8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7월24일 방송돼 논란을 빚은 노회찬 타살설 보도. 사진= MBN 뉴스8 보도화면 갈무리

⑦ 경찰이 ‘문재인 치매설’ 영상 삭제 요구

경찰이 문재인 치매설 영상 삭제를 요구했지만, 방통심의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이다. 복수의 방통심의위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사회질서 위반을 이유로 문재인 치매설을 다룬 ‘신의 한수’ 유튜브 영상을 비롯해 16건의 콘텐츠 삭제를 방통심의위에 요청해왔다.

▲ 사진= 유튜브 신의 한 수 화면 갈무리
▲ 사진= 유튜브 신의 한 수 화면 갈무리

그러나 여야 추천 방통심의위원들은 모두 제재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소영 위원은 “가짜뉴스의 해법은 정보 차단으로 해결될 수 없다. 언론은 정보를 책임감 있게 검증하고, 정부는 행정을 투명하게 하면서 소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고, 수용자는 정보를 걸러내고 독해하는 리터러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⑧ TV조선 진행자들은 박정희를 사랑한다?

전원책, 김광일, 엄성섭. 이들은 공통점은 TV조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문제 발언을 해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중 전원책과 김광일은 하차했다. 김광일은 현재 유튜브 진행자로 변신해 심의를 피하고 있다.

▲ 사진= 지난해 7월13일 TV조선 뉴스화면 갈무리
▲ 사진= 지난해 7월13일 TV조선 뉴스화면 갈무리

전원책은 지난해 7월13일 방영된 TV조선 ‘종합뉴스9’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님 송구스럽다는 말씀 올립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방통심의위는 지난 3월 TV조선 ‘종합뉴스9’를 심의했고 여야추천 위원 전원 합의로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엄성섭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앵커는 지난 9월20일 방송분에서 2018평양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후한 평가를 한 점을 지적하면서 “이승만 박정희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박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흥분했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방통심의위는 이 안건 역시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 지난 9월20일 자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화면 갈무리
▲ 지난 9월20일 자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화면 갈무리

이와 관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TV조선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의위원들이 제대로 심의규정을 숙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⑨ 한국당 “명예훼손 당했다” 방통심의위에 200건 민원

자유한국당이 지난 5월 ‘정당 명예훼손’을 이유로 방통심의위에 200건 민원을 제기했다. 방통심의위는 지금까지 국회의원이 본인의 명의로 제기한 민원만 심의했을 뿐 당 명예훼손 여부를 심의한 전례가 없다. 정당 차원에서 민원을 제기한 경우는 처음이다.

자유한국당이 제기한 정당 명예훼손은 ‘정당 명예훼손’과 ‘정당 소속 의원 명예훼손을 정당이 대신 민원 제기하는 경우’로 나뉜다. 논의결과 방송통신심의위원 전원은 ‘정당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정당이 공적 기구이고 표현의 자유 위축을 고려해 명백하게 허위라는 점이 드러날 경우만 제한적으로 심의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동안 정당 명예훼손 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여권 추천 이소영 위원은 “정당은 비판에 열린 존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명예훼손을 인정해선 안 된다”며 “의원의 명예훼손의 경우 억울한 게 있다면 당사자가 직접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 8월27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 모습. 사진= 방통심의위
▲ 지난 8월27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 모습. 사진= 방통심의위

⑩ 인터넷 생방송 진행자 경찰 조사 의뢰

인터넷 생방송 중 여성을 성추행한 진행자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인터넷 콘텐츠를 심의하는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 윤아무개(BJ 현이)씨에게 ‘이용해지’를 의결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를 결정했다.

윤아무개씨는 지난 10월 부산의 한 술집에서 즉석에서 섭외한 여성들과 함께 술을 먹는 방송을 하며 여성의 옷을 벗기고, 만취해 잠들자 성추행하고, 종업원도 성추행하는 내용을 생중계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가 수차례 신고했음에도 플랫폼인 풀TV는 방송을 중단하지 않았다.

전광삼 상임위원은 “범죄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일체를 경찰에서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위원들도 이 같은 제안에 동의했다. 유튜브를 비롯해 개인방송이 증가하고 영향력도 커지면서 이와 같은 심의사례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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