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식(가명‧50대)씨는 고 김용균씨를 ‘용균이’라고 불렀다. 박씨는 김용균씨를 생전에 본 적이 없다. 그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1~8호기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숨진 김씨는 9‧10호기에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일했다. 지난 11일 새벽 밤샘 근무를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박씨는 자기 팀에도 ‘용균이 또래’가 서너 명이라고 했다.

“저도 애들한테 ‘내 몸은 내가 지켜라’고밖에 못해요. ‘누가 지켜주지 않는다, 벨트 밑에 들어가지 말라, 되도록 삽으로 (낙탄을) 퍼내라’고 했었죠.” 충남 태안군 보건의료원 장례식장의 김용균씨 빈소에서 27일 저녁 만난 박씨가 말했다. 하지만 김씨가 숨지고 난 뒤엔 ‘무조건 벨트 멈추고 들어가라’ 얘기한다. 고용노동부는 김씨가 숨진 뒤 태안화력발전소 전 호기를 멈추라는 요구가 커지자, 1~8호기는 가동 중 낙탄 처리를 금지하는 등 시정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없이 들어온 원칙인데, 그게 어떤 건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느꼈다”고 했다.

입사 이듬해 기계에 끼임 사고, 회사는 구급차를 못 부르게 했다

박씨가 사고를 당한 것도 신입 때였다. 입사 2년차였던 2005년에 “나보다 더 신입과 함께” 낙탄 처리에 투입됐다. 가로와 세로 각각 1km 안팎인 저탄장에서 움직이면서 탄을 모아 벨트에 얹는 거대한 기계, 스태커 곁에서 일했다. “뒤에서 움직이는 스태커를 못 보고 있다가 기계가 등을 치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졌어요. 얼른 앞으로 몸을 뺐는데, 바지 끝이 바퀴에 걸린 거죠.” 허벅지 높이에 오는 바퀴에 박씨의 왼발이 끌려들어갔고, 박씨는 2m를 더 끌려갔다.

박씨는 119 구급차가 아니라 자신의 자가용을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청업체 측이 발전소 내에서 구급차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원청에 들키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자기 차를 타고 나갈 때에도 비상등을 켤 수 없었다. “제가 실려나갈 때에도 벨트는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박씨가 말했다.

▲ 박영식(가명)씨가 지난 2005년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에서 일하다 왼발이 끌려들어가는 산재 사고를 당한 스태커 바퀴 모습.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 박영식(가명)씨가 지난 2005년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에서 일하다 왼발이 끌려들어가는 산재 사고를 당한 스태커 바퀴 모습.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 내 가동 중인 스태커 근처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 내 가동 중인 스태커 근처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동료들은 박씨가 다친 다리를 못 보도록 눈을 가렸다. 박씨는 ‘괜찮을 줄 알았다’고 돌이켰다. 잠시 있으니 아픈 감각이 사라져 많이 다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옮겨져 의사 허락을 받고서야 자기 다리를 확인했다. 그의 왼발은 짓이겨져 있었다. 박씨는 ‘마치 돼지 족발을 뜯어먹다가 하룻밤을 물에 담가 불린 모양’이었다고 말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환부에 탄가루와 쇳가루가 섞여 들어가 발이 썩기 시작했다. 그는 구급차를 타고 서울로 옮겨져 다시 수술을 받았다. 이후 2008년까지 4년 간 모두 7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회사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려 했다. “두 회사 모두 산재 처리를 안 좋아해요. 서부발전은 산재 많은 회사와 계약을 안 하고, 하청은 다음 계약을 못 따낼까봐 숨기고.” 그가 소속된 하청업체는 당시 그가 받은 3차례 수술 비용을 주면서 산재 처리하지 말자고 했다. “회사에도 불이익이 가고 개인에게도 안 좋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고 있었죠. 산재라는 개념을 잘 몰랐어요.” 그러다 누군가 이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박씨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서부발전에선 지난해까지 9년 동안 44명이 산재로 죽거나 다쳤지만, 재해 방지에 노력했다며 정부로부터 산재보험료를 22억여원 감면받았다. 3년째 무재해 인증도 받았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일하다 숨져도 원청의 재해기록으론 남지 않는다. 서부발전이 지난해 국회에 인명사고 발생 건수를 4건 누락해 보고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고용노동부를 통해 산재 처리된 내용을 받아 제출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청은 그 얘기예요. ‘네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온다. 네 회사가 나가면 다른 회사가 들어온다.’”

박씨는 30분을 걷지 못한다. 왼발 뒤꿈치에 있는 지방을 다 긁어내, 걷다 보면 까맣게 핏줄이 터진다고 했다. 통증은 날씨가 흐릴 때도, 계절이 바뀔 때도 찾아온다. “사고가 났던 12월이 되면 말도 못하게 아파와요. 어떤 통증인지 말로 설명을 못하겠어요. 저리고, 아리고, 시린다고 해야 할까.”

일할 땐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업무 내용은 바뀌었지만,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고 걸어 다녀야 하는 건 여전하다. 박씨는 일이 끝나면 집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찬물과 뜨거운 물에 20분씩 번갈아 담근다. 발의 감각을 마비시켜야 잠들 수 있다. 올 초까지 몇 년 간 통증을 잊기 위해 술을 마지고 잠을 청했지만, 몸이 축나는 것을 느끼고 얼마 전 술을 끊었다.

▲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에서 스태커가 탄을 쌓고 있다.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에서 스태커가 탄을 쌓고 있다.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정규직과 비교 무의미… 애초 시키지 않을 일

박씨는 ”‘안전하라’는 회사 말이 사실은 ‘네 안전은 네가 지켜라’는 얘기”라고 했다. 원청인 서부발전은 ‘움직이는 벨트 등 회전체에 접근하지 말라’ ‘2인1조로 일하라’ 등 원칙을 내려보낸다. 하청업체들은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을 챙기라’는 ‘안전 문구’를 보낸다. 하지만 무용지물이다. 안전을 챙기면 일을 끝낼 수 없다.

“벨트가 움직이는 동안 직원들이 나와 있으면, 원청은 ‘직원들이 왜 쉬고 있냐’고 회사(하청업체)에 따져요. 그럼 회사에선 일하라고 지시하고요. 용균이 사고 이후론 벨트를 멈추고 청소하고, 몰려다니게 하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어요.”

태안화력에서 15년째 일하는 박씨의 급여는 연 3500만원 안팎이다. 그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다. 애초 업무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낙탄 처리와 같이 위험하고 열악한 업무는 모두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 몫이다. 1~4호기 낙탄 처리는 하청업체가 재하청을 줬다. 만약 낙탄 처리 업무가 정규직화한다면 어떨지 묻자, 그는 ‘그런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정규직에겐 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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