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출연 안 합니다. 안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구·경북의 지난 100년 동안 주요 사건을 10편에 담아 지역민의 기억을 통해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다시금 성찰하고자 한 10부작 다큐멘터리 ‘기억, 마주서다’를 기획한 것은 올해 6월이었다. 제작기간이 길지 않은 터라 섭외 전화 너머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때 마다 애가 바짝 바짝 타들어갔다. 주류의 역사가 아닌 개인의 일기나 기억을 토대로 지역사를 이해하려는 프로그램의 취지상 증언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직접 당사자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그나마 몇 분의 생존자들은 방송에 비협조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연, 해방이후 친일관료와 미군정의 폭압에 저항했던 대구 10월항쟁, 빨갱이로 몰려 영문도 모른 채 몰살당한 경산코발트광산·가창골 사건 등 경북일대 민간인 학살사건, 반민특위 좌절과 더불어 역청산된 독립 운동가들, 전교조보다 30여년이나 앞서 대구에서 시작된 교원노조, 4·19 도화선이 된 대구 2·28 민주화운동,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이유로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남조선 해방 전략당, 인혁당 재건위 등 각종 국가공안조작사건.

대구·경북 근·현대사 100년 동안 민중에 각인된 주요 사건들은 ‘보수 대구’의 모습과 너무나 결이 다르다. 이 사건들을 사건 당사자 개인의 기억으로 끌어내 잊혀지고 봉인된 역사 이면을 담아내고 싶었다. 주류의 역사에서 소외된, 그래서 기록되지 못한 민초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런데 정작 그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한 당사자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방송 안 합니다. 이제 겨우 잊고 사는데 왜 꺼내는 겁니까.”

‘기억, 마주서다’ 아이템 대부분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무죄로 밝혀졌다. 이미 무죄판결로 오명을 벗고 정리된 사건들을 굳이 꺼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로운 팩트라도 추가 취재해야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몇 번씩 자문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대면할 때마다 확신했다. ‘이제 와서 이 얘길 왜 합니까. 다 끝났는데’ 바로 이 한 마디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아, 이것이 끝난 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되레 느꼈다.

▲ KBS 대구방송총국 '기억, 마주서다'는 지난 10일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시상식에 참석한 제작진. 사진=제작진 제공
▲ KBS 대구방송총국 '기억, 마주서다'는 지난 10일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시상식에 참석한 제작진. 사진=제작진 제공

말로는 ‘다 끝난 일’이라지만 그 분들은 온몸으로 이것이 끝나지 않은 일이라고 증명해주었다. 인터뷰 내내 화를 내기도, 울기도 하며 결국에는 아직 사회에 나서기 두렵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여전히 가족을 빨갱이로 몰고 간 국가폭력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었다. 잊었다고, 끝났다고 말하지만 애써 어두운 기억을 덮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대구·경북의 유가족들이 민간인 학살사건이나 각종 공안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히는 것은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되찾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차가운 시선을 견디라는 말과도 같다. 그럼에도 마음을 열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늦었지만 자신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처음으로 방송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10편의 아이템을 취재하다보니 대구·경북 보수화의 역사적 맥락이 조금씩 보였다. 해방 이후 반혁의 도시였던 대구가 10월항쟁, 각종 민간인 학살사건 등을 거치며 반공프레임에 갇혔고, 억울한 국가폭력 희생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숨어들었다. 몇몇 사건은 금기가 되어 민중의 기억으로만 전해 내려왔다. 사건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살아왔다.

앞으로 마주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여전히 곳곳에 용기내서 직시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모른 채 눈 감고 살았던 폐부가 드러날까 차마 마주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기억, 마주서다’를 제작한 치열했던 여름, 제작진은 그 동안 외면해왔던 것들과 당당히 마주설 수 있는 작은 훈련을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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