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지난 11일 숨진 뒤 국회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안 논의에 나섰으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김용균 시민대책위와 김씨의 유족이 이날 회의장 앞에서 법안 처리를 호소했지만 여야는 27일 오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는 26일 산안법 전부개정안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이장우‧신보라 의원이 쟁점 사항 가운데 원청 책임과 양벌규정 내용 완화를 요구했고, 일부는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노위 소속인 이정미 의원 보좌관에 따르면 이장우·신보라 의원은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즉 ‘위험의 외주화’ 금지 조항(58조)의 예외 범위를 넓히자고 요구했다. 현행법은 도급 금지 작업을 명시하지 않았다. 개정안 원문은 58조에서 ‘일시‧간헐 작업’과 ‘대통령령으로 정한 필수불가결한 기술’을 제외하고는 유해‧위험작업 도급을 금지했다. 이 의원과 신 의원은 도급 허용 범위에 ‘전문적 업무’를 포함하자고 주장했다.

두 의원의 요구는 관철됐다. 여야는 논의 끝에 도급 금지 예외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이라는 문구를 빼고 ‘전문적’이라는 단어를 넣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24)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6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만나고 있다. 이 대표는 ‘힘드셔서 어떡하나. 앉아서라도 하시라’고 했지만, 김씨는 “전 이걸 딴 데 가서 지켜볼 수가 없다. 불안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사양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24)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6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만나고 있다. 이 대표는 ‘힘드셔서 어떡하나. 앉아서라도 하시라’고 했지만, 김씨는 “전 이걸 딴 데 가서 지켜볼 수가 없다. 불안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사양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개정안이 도급 허용 사유에 ‘전문 기술’을 포함하면 발전정비 업무에서 도급이 유지될 공산이 크다. 발전사들은 발전소 핵심업무인 발전정비를 놓고 ‘전문성’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 보좌관은 “하한형을 도입하지 않아 애초 원청에 책임을 지우기에 한계가 있는 법안인데, 점점 누더기가 돼가고 있다”고 했다.

두 의원은 도급인(원청)이 관계수급인 근로자(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관리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 조항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부터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김용균씨의 유족과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심사가 열리는 환노위 회의장 앞에서 긴급 입장발표를 했다.

▲ 26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법안처리 상황을 지켜보던 김용균씨의 유족과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회의장 앞에서 긴급 입장발표를 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6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법안처리 상황을 지켜보던 김용균씨의 유족과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회의장 앞에서 긴급 입장발표를 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나는 지금 애가 타 죽겠는데, 이 애태움은 나만의 것이냐.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암담하다”고 했다. 김씨는 “누구도 다시 저와 같은 사태를 겪지 않도록, 제발 본인이 겪는 것처럼 대해 달라”며 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김씨는 “정부와 회사로 인해 한 아이를 처참하게 잃었다. 이제는 무서울 것이 없다. 법을 만들어 죽은 아이 앞에서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씨의 이모는 “어느 당에서 누가, 왜 이 법을 발목 잡는지 꼭 밝히고 싶다.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편 김씨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회의장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려는 순간, 국회 직원이 ‘기자회견을 하려면 예약을 한 다음 정론관에서 하라’며 제지했다. 시민대책위는 항의했고, 환노위 조사관의 중재로 세 걸음 떨어진 공간에서 입장 발표를 했다.

▲ 민주노총은 26일 오후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은 26일 오후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와 청년전태일,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오전에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국회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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