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은 말한다. “이계(李烓)는 간사하고 교활했다. … 기회를 엿보아 원한을 가진 자들을 보복하고 선비들을 모함했다. 소인(小人)이 감정을 품어 보복하고 독기를 부려 국가를 해침이 매우 심하다.” 1638년(인조 16) 8월 8일자 인조실록에 기록된 사관의 논평이다. 이계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사관의 혹평을 받았을까.

서인이 주도한 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새 왕 인조가 즉위했다. 서인들은 반정 뒤 광해군 시기 집권 세력인 북인도 일정 부분 조정에 참여시켰는데, 여기에서 공서(功西)로 불리는 공신들이 주축이 된 ‘현실론계 서인’과 청서(淸西)로 불리는 ‘명분론계 서인’이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공서는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북인과 남인들을 포용하자고 하는 반면, 청서는 광해군을 폭정으로 이끈 북인들을 소인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결단코 조정에 참여시킬 수 없다고 했다. 인조와 공서가 북인과 남인을 포용하자고 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청서의 영수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었다. 그는 병자호란 당시 ‘죽지 않는 사람 없고 망하지 않는 나라 없다.’라고 말하면서 차라리 이 성에서 함께 운명하여 오랑캐에게 치욕적인 굴복을 당하지 말자고 했다. 이런 기개와 지조를 가졌기에 재야 사림의 중망을 받으면서 인조와 공서의 정국주도를 견제할 수 있었다. 반정 초기 김상헌은 인사권을 가진 이조참의나 언관의 장인 대사간에 임명되며 조정 기강을 진작시켰다. 그런 그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임금을 호종하지 않았던 이계 삼부자를 탄핵했다. 이계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모두 나라를 저버린 죄인이라는 내용이었다.

▲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근무하다 비위 의혹으로 검찰로 복귀 조치된 김태우 수사관의 변호를 맡은 석동현 변호사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대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근무하다 비위 의혹으로 검찰로 복귀 조치된 김태우 수사관의 변호를 맡은 석동현 변호사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대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자호란 때 조정의 논의가 공신계 주화파의 의견대로 항복으로 결정되자, 김상헌은 목을 매 자결을 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굴욕적인 항복을 당했고, 김상헌은 성을 나와 안동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런 그의 행적을 두고 당연히 비판이 없지 않았다. 사지로 가는 임금을 뒤로하고 자신의 목숨을 우선시했다는 것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조정의 정세는 주화파 주도였고, 척화파는 나라를 그르쳤다는 비판을 받아 수세를 면치 못했다. 비판의 핵심은 김상헌이었고, 그 선봉에 섰던 자는 바로 이계와 부마(駙馬) 가문의 인사 유석(柳碩)이었다. 이계는 광해군 때 문과에 급제했고, 효령대군 후손인데다 장인은 북인계 가문의 인사였다. 그는 김상헌의 탄핵으로 한동안 조정에 나오지 못했다가 13년여가 지나서야 다시금 조정에 본격 진출했다. 그것도 사헌부 지평으로. 출사 이후 그의 역할은 김상헌에 대한 탄핵이었다. 인조로서는 명분만을 고집하는 김상헌 등 척화파의 기세를 꺾기 위해 왕실의 후손인 이들을 삼사에 포진시켰던 것이다. 결국 김상헌은 반청 주도 인사로 지목되어 청나라에 압송되었다.

그 뒤 이계는 의주(義州) 옆의 선천부사(宣川府使)로 부임하지만 명나라 상인들과 밀무역을 하다 청나라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을 받았다. 그는 이를 모면하기 위해 조선이 명나라와 주고받았던 국가기밀과 주요 반청인사들을 모조리 고발했다. 게다가 자기가 이곳으로 부임한 것은 김상헌을 탄핵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때문에 오히려 주화파였던 영의정 최명길을 비롯하여 다수의 척화파 인사가 심양으로 압송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계는 그 공으로 청나라에서 상이라도 받았을까. 용골대의 보고를 받은 청태종은 “이계가 사실대로 고하긴 했지만, 나라를 팔아 제 목숨을 구하려고 했기에 죄가 무겁다. 조선국왕은 법에 따라 처단하라.”고 했다. 결국 그는 참형 당한 뒤 효시(梟示)되었다. 그를 구금해 두라는 청 황제의 명이 뒤따라 왔지만 이미 늦었다.

최근 청와대 특별감찰반으로 근무하던 검찰수사관이 청와대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수사관은 자신의 비위혐의로 인해 감찰과 수사를 받게 되자 오히려 공무상 수집하고 작성했던 국가기밀을 언론에 공개하고서 청와대가 불법사찰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비위혐의나 불법사찰지시의혹은 수사로 명백히 가려져야 할 것이지만, 그의 주장이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국가기밀을 무책임하게 공개하는 것이 공무원의 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숙한 청와대의 대응도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변인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공무원 행동강령이 괜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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