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00명당 1명 비율로 발생하는 파킨슨병은 안타깝게도 현재 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어렵다. 알츠하이머와 함께 손꼽히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의도하지 않은 손의 떨림, 근육 강직과 같은 현상을 동반하고 혼자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한다. 종합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나면 마도파라는 약을 먹는다.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앞서 언급한 현상들이 잦아들고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작용이 꽤 크다.

대표적으로 초조, 불안, 불면, 환각, 망상이 나타난다. 환자에 따라 특성은 다르지만, 대체로 밤에 이런 현상을 호소한다. 망상이 심할 경우 새벽에도 수차례 환영이 나타나 괴롭히기도 하며 자신이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귀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파킨슨병에 걸린 환자들은 매일 밤 망상과 악몽 속에 시달리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처음엔 측은지심으로 환자의 청을 듣기도 하지만 계속되는 현상에 주변인들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그런 일 없다” “망상일 뿐”이다. 그러다 지친 환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무너져 내려가는 자신을 비관하며 그렇게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많은 환자가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일상이 파괴되고 병원에 입원한다. 간혹 현실 세계로 나와 가족들과 대화가 가능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환자는 “내가 갈 때가 됐다”는 현실 인식만 되뇔 뿐이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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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등장하는 게임회사 대표 유진우(현빈)는 파킨슨 약 부작용과 같은 ‘망상’과 같은 현상을 겪는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에 기반한 게임을 했을 뿐인데, 상대로 싸웠던 차형석이 실제로 죽었다. 문제는 죽은 뒤 반복적으로 현실 세계인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을 때도 나타나니 이는 다른 사람 눈에는 ‘망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칼을 손에다 쥔 것처럼 허공에다 손을 휘저으며 싸우고 혼자 바닥을 뒹군다. 때로는 그 망상과 같은 캐릭터가 실제 칼싸움에서 자신을 짓눌러 고층 호스텔에서 추락하게 돼 치명적인 골절상을 입기도 한다. 드라마 속 유진우는 1년 간 적들과 싸웠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실체에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곧 방법을 찾을 거 같다. 필자의 아버지는 파킨슨병의 후유증으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않는 적들과 1년간을 싸웠지만, 결국 그들을 이기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다.

물론 이 드라마는 판타지다. 현재의 물리학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깊은 몰입감을 주는 건 바로 증강현실에 설득력 있는 이야기 전개 덕분이다. 타임슬립 드라마 ‘나인’ 그리고 웹툰과 현실을 넘나드는 증강현실을 이야기로 풀어낸 드라마 ‘W’를 만든 송재정 작가의 힘이다.

송 작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의 욕망과 죽음 그리고 시간으로 집약된다. 전작에서 그는 인간의 유한성에 천착하며 인간이 욕망이라는 괴물을 다스릴 것을 늘 말해왔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마법과 과학,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세와 현대, 그리고 그라나다와 서울 등, 공유될 수 없어 보이는 세계들이 한데 섞이고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경험을 통해 사랑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우리가 마주할 증강현실의 모습은 어떤 형태로 다가올까. 그때는 정말 유진우처럼, 파킨슨병에 걸린 필자의 부친처럼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계속해서 봐야 할까. 고통을 누르기 위한 약을 먹으며 견디는 디스토피아는 아닐까. 인간의 욕망이 인류를 불행으로 가져가지 않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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