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식민지와 오랜 독재정권에 시달린 동남아시아에서 자유언론을 위해 싸우는 언론인을 만난 현장 르포가 하나의 책으로 나왔다.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인 박성현 김춘효 두 저자가 쓴 책 ‘우리는 말하고 싶다’는 ‘분투하는 아시아의 자유언론’이란 부제가 달렸다.

하나 같이 권력 편향적인 동남아 주류언론 틈새에서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6개국의 대안 언론인들을 만났다.

때로는 베트남 공안의 눈을 피해 007작전같이 비밀스럽게 만나야 했다. 미얀마에선 로힝야 학살 원인을 살폈고, 61년만에 정권교체된 말레이시아는 이전 정권의 언론탄압 실상을 다뤘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언론은 독재정권에 의해 언론자유가 심각히 침해당했다. 두 나라 언론인들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살해 또는 가택연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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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언론인들은 독재자의 회유에 무릎 꿇은 반면 인도네시아 언론인들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국립도서관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은 독재정권에 비판적 보도를 하다 폐간된 진보적 신문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폐간된 신문을 찾아주는 사서의 눈빛에서 자유언론투쟁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은 저항의 역사를 지우기라도 하듯 폐간된 신문을 보관하지 않았다.

식민당국과 독재정권이 만든 ‘억압의 역사’

책은 196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아시아 언론을 정치경제학적으로 연구해온 존 렌트 미 템플대 매스컴 석좌교수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렌트 교수는 동남아 언론은 한마디로 ‘억압의 역사’로 규정했다.

렌트 교수는 “식민지 잔재와 독재자의 언론탄압 법제화가 억압을 심화시켰다. 동남아 방송은 식민지때 시작됐다. 아시아 최초 단파방송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세웠다. 인도네시아 지하자원을 빠르게 본국에 보내기 위해서다. 1920년 영국 제국주의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언론을 통제하려고 해마다 발행허가를 받도록 규정해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금도 언론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활용한다. 해마다 신문사 면허갱신 때 심사기준을 담은 명확한 법적 규정도 없다.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선 이념 대립이 언론탄압의 도구가 됐다. 자본주의 국가에선 반공사상이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인도네시아 진보 언론인들은 공산주의자로 내몰려 살해되거나 실종됐다. 반대로 공산화된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반도는 철저히 공산당이 언론을 장악해왔다”고 평가했다.

렌트 교수는 동남아 언론지형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프랑스 지배를 받은 베트남과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국가들이다. 이들은 해방 직후 잠시 언론자유를 누렸지만 1976년 공산화 이후 베트남 모든 신문은 국가 소유가 됐다. 결국 베트남 언론은 공산화 전후 모두 국가통제가 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둘째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티모르, 브루나이 등 영국과 네덜란드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신문은 정당이나 정부기관 소유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신문사는 해마다 국가에 의무적으로 면허를 갱신 받아야 한다. 심지어 신문허가가 취소되면 법원에 항소할 수 없도록 언론법에 규정돼 있다. 허가 취소 뒤 새로운 출판 허가를 신청할 수도 없다.

셋째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유럽 식민지가 아닌 미국 식민지였고, 독재자 마르코스로 인한 권언 유착이 심한 게 특징이다. 필리핀 신문시장은 마크코스와 소수의 가족(족벌언론) 소유의 통제가 심하다. 현재 필리핀 신문을 통제하는 가문은 로페즈, 소리아노, 엘리잘데, 로체스 등이다.

기자 살해하고도 활보하는 필리핀… 마르코스·두테르테 두 독재

국제비영리기구인 ‘언론인보호위원회’의 2018년 세계불처벌지수에서 필리핀은 세계 5위를 차지할만큼 악명 높다. 불처벌지수는 언론인을 살해한 범죄자가 처벌 받지 않고 자유로이 활보하는 지수를 말한다.

1965~1986년 마르코스 시대에 필리핀 언론은 철저히 통제당했고 언론 소유권은 마르코스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 손에 집중됐다. 이를 마르코스 패거리 언론이라 부른다.

두테르테는 1988년부터 22년간 민다나오 섬에 있는 다바오 시장을 지냈다. 그의 딸 사라 두테르테는 현재 다바오 시장이다. 장남 파올로도 한때 부시장을 지냈다. 다바오와 민다나오는 두테르테의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필리핀 자유언론은 주도하는 중진 언론인들은 대부분 마르코스 시대에 대학생이었거나 막 기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필리핀 언론에 남은 마르코스 망령 못지않게 지금 두테르테의 ‘미디어 킬링’도 심각하다고 말한다.

‘다바오 투데이 닷컴’의 메델 에르나니(65) 기자는 “두테르테의 행정명령 때문에 마닐라에선 너무 더워 밤에 길가에 앉아 바람을 쐰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무더기 체포당한다. 단 1주일 동안 마닐라에서만 이렇게 8000명이 체포돼 마르코스 시절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2018년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필리핀은 180개 나라 가운데 133위였다. 두테르테 정부에서 살해된 언론인만 현재까지 12명에 달한다.

‘레마테’의 칼럼니스트인 호아킨 브리오네스는 지난해 3월13일 오전 8시45분께 귀가 길에 오토바이를 탄 킬러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브리오네스는 레마테에 불법 낚시, 불법 도박, 마약거래 같은 민감한 주제에 직설적인 칼럼을 써왔다. 그는 피살 전 살해협박을 받았다. 용의자 로사리오는 지역 범죄조직의 두목으로 알려졌다.

노노이 에스피나 필리핀언론노조 위원장은 “마르코스 이후 민주주의 회복을 기대했던 1986년부터 언론인이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론노조 건설을 목표로 1986년 결성됐는데 언론인 살해가 잇따르자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며 “1986년 이후 184명의 언론인을 잃었다. 특히 두테르테 임기 2년이 지난 지금 12명이 살해됐고 조사가 필요한 피살자가 몇 명 더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확산과 함께 언론자유 기지개 켜는 베트남

베트남에선 공산당의 미디어 통제에 불만과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국경없는 기자회의 2018년 언론자유지수에서 베트남은 180개국 가운데 175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이다.

‘버섯 어머니’란 이름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2006년부터 글을 써왔던 응우옌 응옥니 으 꾸인(39)은 2016년 10월10일 형법 88조 반국가선전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돼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꾸인은 토지 몰수와 경찰폭력, 표현의 자유 탄압에 비판적인 글을 써왔다. 꾸인은 반체제 인사 지지와 정치범 석방 캠페인도 벌였다. 꾸인은 남중국해 항의시위에도 참여했고 포모사의 유독성 폐기물 유출 때도 시위에 참가했다.

꾸인은 2009년 중국기업의 보크 사이트 광산 건설 때 베트남 정부가 벌인 토지 몰수에 반대하는 티셔츠를 입어 처음 당국에 체포됐다. 꾸인은 2013년 5월엔 세계인권선을 유포해 다시 구금됐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시민인 블로거에게 10년 중형이 내려지자 세계가 꾸인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베트남 정부는 2018년 10월 꾸인을 석방했다. 그 뒤 꾸인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처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확산으로 베트남 국민들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미얀마 망명언론 돌아왔지만… 말레이시아 61년만에 정권교체

‘버마 민주의 소리’는 버마 망명자들이 1992년 노르웨이에서 시작한 라디오 방송으로 출발했다. ‘버마 민주의 소리’는 현재 위성과 IPTV, 온라인뉴스로 확대됐다. 버마 민주의 소리 나잉 기자는 지난 6월26일 타앙민족해방군 주최 마약퇴치의날 행사 취재차 갔다가 미얀마 군대에 체포되기도 했다.

미얀마에선 2015년 11월8일 총선 승리로 아웅산 수치의 민간정부가 들어서 국민의 기대가 컸지만 2016~2018년 3년간 언론탄압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2018년 5월9일 61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는 선거혁명을 경험했다. 말레이시아는 2018년 국경없는기자회 발표 언론자유지수에서 180개국 중 145위로 최하위권이었지만 선거혁명 이후 2019년 순위 상승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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