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엔 반투명 비닐 몇 겹을 덮은 천막이 인도에 늘어섰다. 행인들이 한 줄로 천막을 스치고 지나간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해직자 원직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 8월21일부터 돌입한 무기한 농성장이다. 연말연시를 열흘 앞둔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 천막농성과 1인시위 현장을 찾았다.

 “오늘은 좀 따뜻할 때 오셨어요. 지난주처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사방이 부옇게 김이 서려요.(웃음)”. 양해용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집행위원이 말했다. 파라솔 세 개를 이어 지붕을 만들고, 비닐을 덮은 둘레를 나무 각목으로 받쳤다. “밑쪽은 장판이랑 침낭이 있으니 괜찮은데, 아무리 덮어도 마시는 공기가 차니까 고생이죠. 지난주 당번은 80%가 병원엘 갔어요.” 정부서울청사 앞을 포함해 총 3곳에서 5명씩 농성장을 지킨다. 회복투 집행위원들은 붙박이고, 나머지 성원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당번을 선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해직자 원직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 8월21일부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앞길에서 무기한 천막농성 중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해직자 원직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 8월21일부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앞길에서 무기한 천막농성 중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양해용 회복투 집행위원은 “대선 끝나고 6개월이면 다 (복직)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19대 대선에 걸쳐 공무원노조 총회와 정책질의서 답변 등에서 ‘해직공무원이 전원 일괄 복직되고 사면복권돼야 한다’고 밝혔다.

해직공무원들은 대부분 2004년 참여정부 때 파업 등 단체행동권을 불허하는 공무원노조법 정부안에 반대해 연가 투쟁하다 대량해직됐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파면·해임된 이들 가운데 136명이 지금까지 복직하지 못했다. “이 중 3명은 고인이 됐고, 29명은 정년이 지났죠.” 양해용 위원이 손가락을 펴보였다. 

이들은 공무원노조 등 농성하는 시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회복투는 지난주 문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를 찾을 때 피케팅을 못했다. 집회 신고를 했는데도 경호대가 막았다. “지난해엔 대통령이 지나가는 와중에 바로 옆에서 하도록 조율했거든요.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피케팅을 하는데요.” 지난 4월 농성 시작 무렵과 달리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 발길도 끊겼다. “정부 초기엔 건드리지도 않던 사랑채 앞길 현수막도 경찰이 3주 전부터 사흘이 멀다 하고 떼 간다”고 했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들이 청와대 사랑채 앞 해직공무원 원직 복직 촉구 농성천막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들이 청와대 사랑채 앞 해직공무원 원직 복직 촉구 농성천막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때문에 ‘해직자 원직복직 특별법’이 통과 실마리는 잡았지만, 마음 놓고 농성을 접을 수 없다.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김은환 회복투위원장과 지난달 26일 시작한 단식을 이날 중단했다. 전날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성장을 찾아 정부여당과 노조, 전문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고 2월 임시 국회에서 ‘해직자 원직복직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영창 집행위원은 ‘청와대 의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 대량해직의 부당함을 문재인 정부가 인정하느냐의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15년 간 길에서 싸워 온 세월은 무색해진다”고 말했다.

사랑채 앞길은 이전 정부보다는 자유롭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열린 경호’를 표방했다. 지난해 6월 청와대 앞길을 종일 전면개방했다. 1968년 박정희 정권때 북한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던 1·21사태 이래 처음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강조한 ‘탈권위’와 ‘소통’의 일환이다. 사랑채 앞 인도를 지키던 한 경찰은 “‘불법행위할 것 같은 거동수상자’ 신분을 확인하는데, 행인을 체크하는 빈도수가 줄었다”고 귀띔했다.

사랑채 앞 광장엔 모두 7명의 1인 시위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세 개의 가로수 화단 주위에는 크고 작은 글씨를 적은 하드보드지들이 둘러져 있다. 노숙농성하는 이들의 잠자리 겸 농성장이다. 시위자들은 마포구 대흥동 재개발 대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남 환영,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 청와대 신문고 폐지 등을 촉구했다. 

▲ 지난 21일 청와대 사랑채 전경. 1인 시위자들이 농성하는 가운데 경찰들이 곳곳에 서서 지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21일 청와대 사랑채 전경. 1인 시위자들이 농성하는 가운데 경찰들이 곳곳에 서서 지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란색 천으로 피켓을 만들어 입은 70대 도아무개씨 자리도 화단 옆이다. 마분지 팻말엔 ‘257일째’라고 써 붙였다. “저녁 6시면 사랑채가 문을 닫아. 그럼 저어기 무궁화공원에 있는 24시 개방화장실에 가요.” 도씨는 배가 고프면 연무대 쪽 ‘씨유(CU)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새벽엔 누워도 춥고, 앉아도 춥고 그래요. 그러면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던 시절을 떠올려요. 그럼 금방 네다섯시가 돼요.” 자녀들은 도씨가 청와대 앞에서 밤새며 농성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들은 도씨가 낮엔 마트에서 야채를 다듬고, 밤에는 교회에서 기도하며 지낸다고 알고 있다. 

도씨가 살던 집은 2016년 강제집행 당했다. 서울 마포구 이대역에서 2분 거리에 있는 30평에 5층짜리 집이었다. 시행사가 공시가격에 따라 현금을 줬지만, 그 돈으로는 주위에 있는 집을 살 수 없었다. 그나마 세입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다 떨어졌다. 도씨는 국민권익위원회와 청와대, 구청과 시청 등 “관공서란 관공서엔 다” 청원해봤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갈곳을 찾던 도씨는 지난해 4월 이곳 사랑채 앞 광장에 왔다. 도씨 요구는 이주할 주택이나 당시 시가에 준하는 집값을 달라는 것이다.

▲ 지난 2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257일째 노숙농성하는 도아무개씨가 2년 전 자신이 겪은 강제집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2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257일째 노숙농성하는 도아무개씨가 2년 전 자신이 겪은 강제집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언젠가 경찰이 다가오더니 ‘대통령이 무슨 권한이 있느냐, 1인 시위하게 해준댔지 해결해준댔냐’고 묻데요. 시민이 이 곳을 마지막으로 찾아왔으면, 무슨 사연인지 들어보기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어요.” 도씨는 대선 당시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지난 겨울 매일 촛불을 들고 나갔고, 광화문 광장 시민마이크에 올라가 호소도 했어요. 여기까지 왔는데도 달라진 게 없어요. 이젠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요.” 도씨는 연말에도 농성장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해가 지자 시위자들은 몸을 데우려 발을 굴렀다. 시위자들은 청와대 인사들이 대부분 못 본 척 시위 현장을 지나친다고 말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김의겸 대변인이 이날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악수하는 그림 설치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갔다.

▲ 청와대가 사랑채 앞에 지난 21일 설치한 ‘어서와, 봄’ 전시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진 설치물을 경찰 2명이 지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청와대가 사랑채 앞에 지난 21일 설치한 ‘어서와, 봄’ 전시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진 설치물을 경찰 2명이 지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도씨는 ‘청와대 인사 A씨는 꼭 인사를 받아준다’고 귀띔했다. “지난 7월쯤인가 제게 오더니 ‘제가 무슨 일인지도 못 여쭙고 인사를 했다, 어떻게 할 권한도 없어 죄송하다’고 말하고 가더라고요. 청와대에도 저런 따뜻한 분이 있구나, 생각했지요.”

저녁 6시30분께 줄 맞춘 의경 부대가 연무대쪽 입구에서 나타나 사랑채 앞 길목을 채웠다. 문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집회를 앞두고서다. 시위자 1000여명이 도착하기 전부터 경찰 800명이 투입돼 줄을 맞췄다.

경찰에 막힌 시위 참가자들은 청와대 앞 분위기가 정부 초기와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자신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밝힌 박아무개씨는 “지난해만 해도 경찰이 막지도 않고 도와주는 정도였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도 “초기엔 이렇게 많은 경찰이 청와대 입구 앞에서부터 막아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 저녁 7시께가 되자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문 대통령 면담 촉구 농성을 앞두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 경찰이 투입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저녁 7시께가 되자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문 대통령 면담 촉구 농성을 앞두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 경찰이 투입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21일 저녁 7시께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문 대통령 면담 촉구 농성을 앞두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 800여명은 사랑채 입구를 막아서고 시위대와 대치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21일 저녁 7시께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문 대통령 면담 촉구 농성을 앞두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 800여명은 사랑채 입구를 막아서고 시위대와 대치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비정규직 박씨는 말했다. “그 때도 우리는 집회 정도만 했던 거죠.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시위대를 점점 강경해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봐요. 문재인 대통령은 정규직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경찰은 더 강압적으로 시위대를 통제하고. 점점 더 빠르게 시민들에게 등을 돌리고, 보수화한다고 느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막아선 경찰을 향해 “우리야말로 당신들에게 경고한다. 당신이 우릴 막아서 지난달 문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정규직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우리는 청년노동자 김용균씨를 잃었다”고 외쳤다. 시위대가 경찰의 방어벽을 흩어놓으려 하자 더 많은 경찰이 투입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다음날 아침까지 밤샘 농성을 이어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