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서서 낑겨 가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앞에 선 승객 스마트폰을 봤다. 포털 기사를 누르고 있었다. 본업이 기자인지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근데 좀 이상했다. 기사 본문은 휙휙 내리고, 댓글을 더 열심히 봤다. 다른 기사도 비슷했다. 제목 보고, 사진 보고, 댓글 보고. 몇 명에겐 이유를 직접 묻기도 했다. 그리고 알았다. 독자들에게 기사가 대부분 재미 없단 걸.

그때 수습 기자 시절 생각이 났다. 영화 ‘도가니’가 나왔을 무렵이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촉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기획기사를 세 꼭지나 썼다. 야심차게 썼건만, 조용히 묻혀 버렸다. 아무도 안 봤다. 허망했다. 그때 생각했다. 의미를 잘 전달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단 걸.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좋은 말씀이지만 대부분 좀 지루한) 기사는 좋아하게 만들 수 없단 걸.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 기획은 그런 고민 끝에 시작했다. ‘체험’이란 포맷을 택한 건 여러 이유에서였다. 1. 직접 해보면 더 깊이 안다 2. 생생히 전달할 수 있다 3. 그러면 흥미가 생긴다 4. 소재 고갈 염려도 적다 5. 스스로 많이 배우고 싶다 등이다. ‘저널리즘’을 굳이 붙인 이유는 의미를 잊지 말잔 뜻이었다. 더 많은 기자들이, 이에 동참해, 생생한 현장 기사를 같이 쓰잔 의미도 있었다.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를 연재했다. 돌이켜보니 스무편 정도 쌓였다. 그간 좋아해 주는 독자들도 많이 생겼다. 쓴소리도 겸허하게 다 듣고 있다. 여전히 체헐리즘 본질이 뭔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정리해보자면 이런 것 같다.

‘틀’을 깼다. 기사 분량은 50매를 넘기기도 했다. 소재도 마음 가는 대로 정했다. 브래지어도 입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고, 강아지와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형식도 자유. 리드로 시작하는 정형화 된 기사를 피했다. 그냥 재밌게, 쓰고 싶은 대로 썼다. 때론 일기냐, 수필이냐는 얘기도 들었다. 괜찮았다. 기사가 꼭 기사 형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잘 읽히는 기사면 족했다.

‘눈높이’를 맞췄다. 전문가 멘트로 끝나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거부감이 크다 여겼다. 그보단 ‘공감(共感)’이 필요했다. 취업준비생들 마음을 담아, 솔직한 자기소개서를 썼다. 취준생들이 속이 시원하다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고맙다고 했다. 정육점 주인의 하루를 보냈더니, 자영업자들이 울었다고 했다. 힘든 세상이고, 공감이 필요한 곳이 많다 여겼다.

‘현장’은 치열하게. 체험이란 한계를 잘 알기에, 대충하지 않으려 했다. 기간이 짧더라도, 똑같이 하겠다 했다. 흔들리는 소방차에서 방화복을 입었고, 새벽 두 시까지 콜센터 전화를 받았고, 청각장애 체험 땐 귀마개에 귀덮개로 소음을 차단했다. 취재원들 대다수가, 정말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취재 깊이가 어땠었는지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진심’이 가장 중요했다. 기사를 위한 기사를 쓰지 않으려 했다. 야마를 미리 정하지 않았다. 체험하며 잡았다. 독자들이 기사를 좋아해 줄수록, 맘을 다잡았다. 그럴수록 소신 있게 쓰고자 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던, 취재원들을 떠올렸다. 힘들 땐 이들을 생각하면 힘이 났다. 기사를 다 읽었을 땐, 뭔가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앞으로도 이상한 일들을 많이 할 계획이다. 진심은 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이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 믿는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 사진=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 사진=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