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고용노동청(대전노동청)이 ‘4년3개월 일한 비정규직 아나운서는 노동자로 판단했지만 6년 일한 아나운서는 노동자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국회 국정감사 지적에도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노동청은 대전지역 민영방송 TJB대전방송(사장 이광축)에서 퇴사한 전직 아나운서들이 넣은 퇴직금 지급 재진정 사건에서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결국 해당 아나운서들은 TJB를 상대로 노동자성을 인정해달라는 내용의 퇴직금 지급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대전노동청은 TJB에서 가장 먼저 퇴사한 A씨는 노동자로 인정해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발급했는데 이후 퇴사한 아나운서 김도희씨와 B씨에겐 이를 발급하지 않았다. 해당 확인서는 근로감독관이 노사를 조사한 뒤 체불액을 적어 발급하는 문서다. 노동청 확인서를 받으면 민사소송에서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A씨는 2년 넘는 민사소송 끝에 퇴직금을 일부 받아냈다. 김씨와 B씨는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미디어오늘은 이 문제를 지난 9월 보도했고,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김씨를 참고인으로 신청해 열악한 방송계 현실을 듣고 대전노동청의 성의 없는 조사 태도를 지적했다.

▲ 지난 10월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전직 TJB 아나운서 김도희씨가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 지난 10월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전직 TJB 아나운서 김도희씨가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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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이 문제 개선을 요구했다. 김씨는 국민권익위에 “같은 사안을 근로감독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며 “부당해고 관련 노동위원회 판정은 행정심판·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지만 노동자성 판단은 단지 민원이라 다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0월1일 제기한 재진정 사건을 10월말 대전노동청이 조사한 뒤 11월 초 근로감독관을 바꾼 뒤 재출석을 재촉했고, 바뀐 근로감독관은 노동자성 판단이 어려우며 회사 측과 합의를 종용한다고 썼다.

해당 글을 보면 대전노동청에서 사측이 김씨가 주장하는 금액(퇴직금)의 50% 수준을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근로감독관은 김씨의 동기인 A씨 사례를 들어 퇴직금의 67.5%를 지급해 합의하라고 종용했다. 합의 조건은 ‘회사가 금품을 지급하면 사업주(TJB 경영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동의하는 것이었다.

국민권익위에선 김씨의 글을 대전노동청으로 보냈고, 대전노동청 감독관이 답변을 달았다. 답변을 보면 김씨가 신청한 민원을 “‘재진정사건 처리결과 재고 및 담당 근로감독관 교체 요청’으로 확인된다”며 “근로감독관 교체요청이 교체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정감사 지적 이후 근로감독관을 교체하며 무리하게 사측과 합의를 종용한 것을 문제 삼았는데 이를 ‘근로감독관 교체 요청’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김씨는 감사원에도 대전노동청의 문제를 알렸지만 감사원에선 대전노동청의 명백한 잘못이 발견되지 않는 한 감사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 대전지역 민영방송사인 TJB대전방송
▲ 대전지역 민영방송사인 TJB대전방송

대전노동청은 재진정 사건에서도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전노동청은 지난달 말 “귀하 등(김씨, B씨)의 노무제공이 TJB에 의해 종속성이 인정될 정도로 지휘·감독(지배관리)됐다 볼 수 없는 등 근로기준법상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의 지휘하에 내사종결(혐의없음)했다”고 통보했다.

결국 김씨와 B씨는 지난 14일 TJB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개인이 방송사를 상대로 지난한 소송절차를 밟게 됐다. 김씨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있었지만 4대보험 같이 형식적으론 정규직으로 보기 어려운 면 때문에 노동청에 요청한 건데 노동청에선 ‘사무실에 자리가 있었느냐’ ‘4대보험이 있었느냐’ 등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을 근거를 찾는 질문만 했고 질문 외에는 다른 대답을 못하게 했다”며 “비정규직들의 특성에 맞게 매뉴얼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TJB 관계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회사 직원이었는데 안 좋은 감정으로 지내고 싶지 않았고, 소송으로 가는 것도 좋지 않아 노동청 중재에 따르려고 했지만 결국 의견이 맞지 않았다”며 “소장은 오늘 받아 구체적인 회사 입장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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