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배우 시절 내가 전혀 슬프지도 않고 울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서 울어야 했다. 감독은 내가 울지 않으면 ‘울어’라고 소리쳤다. 심지어 담배 연기를 눈에 갖다 대기도 했다. 이때부터 말도 없어졌고 낯도 가렸다.” (배우 양동근, 2015년 2월1일자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에서)

“저는 정확히 두 번 보았습니다. 몇 겹을 껴입은 어른들도 덜덜 떨던 혹한의 야외촬영 날, 보조출연자로 나온 어린 소녀가 추위를 참지 못해 울고 있는 모습을. 첫 번째 아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 열외 됐습니다. 그런데 열외 사유는 ‘아이가 힘드니까’가 아니라 ‘울면 안 되는 장면에서 우니까 튄다’였습니다.”(지난 1월5일 배우 허정도씨가 개인 블로그에 적은 글)

▲ 사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 사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아동·청소년 배우의 노동권 문제가 심각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 19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DMC산학협력연구센터에서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배우 허정도씨는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 시간이 성인과 같은 수준이다. 인격에 대한 보호는 없다. 윽박지르고 욕설을 하기도 한다. 학습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이들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성장했으면 한다. 너무 추운 날도 촬영은 진행된다”고 밝혔다.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만큼 출연자들 나이와 직업, 콘텐츠 소재 등의 다양해지고 있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다수가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 중 다수를 차지하고 드라마와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을 맡고 있다. 아동·청소년 연기자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 법은 존재하나 유명무실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2014년 7월29일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최초로 만들고 법안을 한 차례 개정했지만, 연령 세분화 등 법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현재 법은 연령 세분화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청소년 연기자 권익 및 학습권 보장 실태는 공식적으로 조사된 자료가 없다.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국내법 적용 여부는 제작자의 윤리나 인격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각 국의 아동·청소년 배우의 용역제공시간 및 휴식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한국은 15세 미만과 이상인 청소년으로 연령 규정을 이분화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 생후 15일~ 6개월 미만 △ 6개월~ 2세 미만 △ 2세~ 6세 미만 △ 6세~ 9세 미만 △ 9세~ 16세 미만 △ 16세~ 18세 미만 등으로 연령 규정을 6단계로 세분화해 노동 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독일은 아동·청소년 배우가 장기 휴학을 하면 학교가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정에는 가정교사를 두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곡예와 승마, 줄타기, 외설, 탑승물의 승차 등에 대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법은 아동·청소년 배우의 노동 가능 연령과 범위부터 노동 시간·휴식·학업성취·계약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한국의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보완·개선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올해부터 미성년자도 조합원 가입이 가능해졌으나 홍보가 안 되어 실제 가입은 없다. 조합원으로서 미성년자도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시청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순택 활동가는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보이콧 운동 등의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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