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 사건을 재조사 중인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검찰 내부와 법무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가 연일 제기되는 가운데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에서도 지속적 조사 방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와 대검 진상조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사위 간사인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사법연수원 23기)이 주로 재조사 사건 관련 검사들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은 지난 20일 이 실장이 “과거사위 활동 기한 연장 시 사표를 쓰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실장은 ‘(과거) 용산참사 사건 수사팀이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며 조치를 취해달라는 조사단의 요구에도 위원회 차원의 보도자료 발표 대신 구두 경고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실장은 고(故) 장자연씨 사건과 관련해서도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조아무개(49) 조선일보 전직 기자에 대한 대검 조사단의 재수사 권고에 반대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과거사위 회의에서 “재수사해도 무죄가 나오면 누가 책임지냐”고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 박상기)는 지난해 12월12일 과거 인권침해, 검찰권 남용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뒷줄 맨 왼쪽이 이용구 법무실장. ⓒ 연합뉴스
법무부(장관 박상기)는 지난해 12월12일 과거 인권침해, 검찰권 남용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뒷줄 맨 왼쪽이 이용구 법무실장. ⓒ 연합뉴스
이 실장은 이 같은 경향신문 보도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대검 조사단 관계자는 “조선일보 전직 기자인 조씨의 아내가 현직 검사인데 이용구 실장이 회의에서 봐주려는 게 보였다”며 “이 실장을 비롯해 과거사위 위원 중에는 조씨나 조씨의 아내 장아무개 검사와 가까운 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 과거사위가 지난 5월28일 발표한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수사 권고 보도자료에는 “2009년 검찰이 내린 강제추행 사건 불기소처분은 부당하다”는 대검 조사단의 핵심 결론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의 불기소 판단 자체가 잘못됐다는 대검 조사단의 결론을 왜곡해 “증거 판단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만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용구 실장이 대검 조사결과를 축소하고 검찰의 잘못을 감싸주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단독] 검찰 과거사위, ‘장자연 사건’ 대검 보고서 축소·왜곡 논란]

조씨가 장자연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후에도 검찰의 대검 조사단에 대한 방해 정황은 이어졌다. 지난 6월26일 불구속기소 된 조씨의 첫 공판은 애초 8월13일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검찰이 두 차례나 조씨 측 변호인의 기일변경 요청을 받아주면서 결국 첫 공판은 원래 과거사위 활동 기한 종료일인 지난달 5일에서야 열렸다.

다행히 지난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과거사위 사건 조사가 충분히 되지 못한 채 종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후 과거사위 활동 기한은 한 차례 더 연장됐다. 하지만 조사단 활동 기한이 한정된 상황에서 검찰이 사건의 핵심 증인을 불러 조사하는 데 필요한 재판 지연으로 사실상 조사를 방해한 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사단 관계자는 “국외 체류 중인 증인이 한국에 들어와야 우리 조사를 받는데 재판이 석 달이나 연기됐다. 재판은 사실 2주마다 잡혀서 얼마든지 중간에 기일을 잡을 수 있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우리와 논의조차 안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위원회에서도 장자연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사건이라 기사가 많이 나오는 건 은근히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사건 처리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용구 실장 등 내부와의 싸움이었다”고 술회했다.

지난 19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지난 19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대검 진상조사단 외부 단원 6인(김영희·배진수·이근우·이소아·조영관·황태정)은 지난 19일 서울고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단 활동 중 일부 단원들이 (조사 대상) 검사로부터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특히 일부 사건에선 민·형사 조치를 운운해 압박을 느끼고 조사와 보고서 작성을 중단하겠다는 일까지 벌어졌다”며 “이는 검찰 과거사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문무일) 검찰총장에 대한 항명이고 검찰 개혁을 염원하는 국민적 기대에 대한 배반”이라고 비판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재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나 결국 조사팀이 변경돼 지난달 15일에서야 새롭게 조사가 시작됐다.

대검 조사단은 위원회에 김학의 사건 등 조사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이용구 법무실장은 “조사단 활동기한이 연장되면 사표를 쓰겠다”고 반대했다. 조사단은 “일부 위원은 ‘(사건에) 욕심내지 말라’는 부적절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전북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을 재조사한 진상조사팀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결론 낸 사실도 21일 밝혀졌다. 이 사건을 맡은 조사5팀은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재조사하다가 부실조사 의혹 등이 제기돼 삼례 사건 외 나머지 사건을 다른 팀에 넘긴 곳이다.

삼례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 등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조사팀 교체와 보강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강도치사 사건임에도 조사팀은 진범에게 나라슈퍼 할머니를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를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 사건 진범이라며 양심선언 한 이아무개씨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단이 조사에서 사건과 관련한 질문 대신 삼례 3인조 재심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와 친분을 물었다”며 “1999년 당시 수사 검사가 조사를 다 받은 우리에게 ‘꼭 징역을 살아야 죗값을 받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삼례 3인조를 기소하고, 진범이 잡혀 자백했는데도 이들을 무혐의로 풀어준 검사였던 최아무개 변호사는 최근 피해자 세 사람을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그는 “삼례 3인들의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행위로 ‘인격살인’을 당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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