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화재 참사가 일어난지 40여일이 지난 가운데 피해자들은 “지자체가 취약계층 재난에 이해가 없어 피해자 지원에 문제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지원 대책 로드맵 없이 땜질대책만 있었다는 지적부터 제대로 된 설명·통보가 부족해 피해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가장 먼저 지원대책의 전달체계가 부실하다는 질타가 쏟아진다. 참사 직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긴급주거지원방안’ 대책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는 피해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의 6개월간 긴급 지원을 넘어 최장 20년간 거주하도록 하는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청, 종로구청, 동주민센터, 피해자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지원을 포기한 피해자까지 생겼다.

피해자들은 국토부 발표 1~2주 뒤에도 계획을 전해듣지 못했다. 피해자 A씨는 종로구청이 처음 ‘임대주택 신청해도 6개월만 살고 나와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우리도 잘 모른다’고 했다고 밝혔다. 주거빈곤층에게 6개월과 20년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A씨는 “‘임대주택 가서 살라’ 하면 다인가? 고시원 살던 이에겐 주방기기, 식기, 이불, 옷, 세탁기, 세면도구 등을 다 새로 사라는 건데 또 6개월 짜리란다. 대부분이 포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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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일고시원 3층 주변 계단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국일고시원 3층 주변 계단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실제로 참사 18일이 지나도록 입주대상 32명 중 18명이 입주를 거부했고, 입주 신청한 14명도 신청을 확정하지 않았다. A씨는 “‘20년 주거 기회 보장’ 계획을 몰라 입주를 포기한 피해자가 있다. 정부-지자체 손발이 안 맞았단 건 관심이 그만큼 없단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예측불가능한 지원’도 문제였다. 피해자들은 지원 분야·규모·기간 등을 듣지 못하고 “주는대로 받았”다. 가령 이들은 첫 달만 나온 고시원세와 긴급지원비 30만원이 다음 달에도 지급된단 사실을 퇴원 3일 전 시민단체를 통해 처음 들었다. 그 사이 지원이 끊길까봐 미리 방을 빼고 나간 피해자도 있었다. A씨는 “왜 시민단체를 통해 알아야 하는지, 고시원살이를 다 알면서 제때 안 알려 준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원규모가 저소득층을 배려하지 않았단 지적도 있다. 참사 직후 지자체 30만원, 시민단체 50만원 등 80만원 긴급지원비가 책정됐다. 이는 취약계층이 일상을 회복하는데 부족했다. 당장 속옷, 슬리퍼 바람으로 대피해 신분증부터 옷까지 모든 가재도구가 전소한 피해자가 있었다. 그는 지원비가 나오기 전 이틀 동안 여름 슬리퍼만 신고 생활했다.

피해자 B씨는 80만원이 ‘위아래 겨울 옷 딱 한 벌 살 규모’라 했다. B씨는 “고시원이 김치·밥을 준대도 세끼 그것만 먹는 게 아니다. 교통비, 식비, 담배값으로 하루 생활비 1만5000원을 잡으면 35만원이 남는다. 신발, 양말, 내복, 상·하의, 겨울외투 한 벌씩 사고 나면 남는게 없다”고 했다. 국일고시원 3층 입주민 대부분은 충분한 재산이 없었고 가진 돈마저 화재로 읽었다.

B씨는 재난 대책 컨트롤타워 부재를 근본 원인으로 돌렸다. 피해지원 필요성, 목적, 규모, 계획을 미리 정하고 총괄 책임자가 이를 맡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전무했다는 지적이다. B씨는 “소득이 적고 주거가 불안정한 계층에게 화재는 재난인데다 대부분 정부기관 도움 없인 일상 회복이 불가능하다. 공공영역이 이런 배려에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 국일고시원 건물 입구에 마련된 추모 물품. 사진=손가영 기자
▲ 국일고시원 건물 입구에 마련된 추모 물품. 사진=손가영 기자
▲ 국일고시원 3층 입주민이었던 양아무개씨가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비주택 주거실태과 과제 발표' 토론회에서 피해 증언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국일고시원 3층 입주민이었던 양아무개씨가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비주택 주거실태과 과제 발표' 토론회에서 피해 증언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최근 만들어진 피해자모임도 동주민센터, 구청 등의 도움없이 피해자들이 스스로 만들었다. 길거리에서 만나거나 기자를 통해서 연락처를 알아내 12명이 모였다. 향후 피해보상을 포함해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는 모임이다. B씨는 “피해자들은 서로 돕거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참사 직후부터 모임이 필요했다. 지자체는 우리 정보를 다 갖고 있음에도 어디도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피해자들도 처음부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시·구청, 주민센터가 ‘우리 부서 일이 아니’라고 답하는 걸 반복해서 들으면서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불만이 쌓였다”며 “분절적 대책은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각한 참사였던 만큼 지자체가 포괄적 원칙과 계획을 가지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세워 피해자 보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종로구청 관계자는 “참사 직후 안전대책 본부를 설치해 10여일 동안 적극 대응했다. 임시주거 마련, 구호물품 및 의료 지원, 긴급생계비 등 지원을 마무리하면서 본부가 해산했고 이후 각 과별로 후속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수사 완료 후 국일고시원 건물 폴리스라인은 철거됐다. 아직 정비·청소가 진행되지 않아 건물 내부는 참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는 27일은 참사 피해자가 사망한지 49일째다. 피해자모임과 2018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주거권네트워크 등은 27일 오후 6시30분 참사현장 앞에서 49재를 올린 뒤 추모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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