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피해자’ 하면 국민은행 자회사인 KB한마음 대표이사였던 김종익(66)씨를 떠올린다. 김씨는 MB정부 초기 광우병 촛불이 타오르던 2008년 7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정책 비방 글, 동영상을 올렸고, 이 일로 불법사찰을 당했다.

MB정부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나서 김씨에게 동영상 게시 경위를 조사하고 김씨에게 압력을 가해 회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회사 주식 1만5000주를 헐값에 넘기도록 했다. 김씨는 불법사찰 때문에 시가 4만원인 주식을 1만2000원에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주범은 당시 총리실 이인규 지원관과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었다. 이후 김씨와 가족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이후 민간인 불법사찰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송에 들어갔다. 1심 법원이 2013년 8월 그의 손을 들어줬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법원은 김씨가 대표이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부분만 피해로 인정했고, 주식 매도는 손배라고 보지도 않았다.

김씨는 국가와 이 전 비서관 등을 상대로 재판을 벌인 끝에 2016년 4월 대법원에서 5억여원의 손배 승소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이 전 비서관 등 7명을 상대로 구상권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 1990년 10월5일자 한겨레신문.
▲ 1990년 10월5일자 한겨레신문.

김종익씨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당시 총리실에 근무했던 장진수(45) 주무관의 폭로 때문이었다. 장진수 주무관은 MB정권 막바지인 2012년 4월4일 김종배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나와 윗선의 지시로 민간인 사찰에 연루됐다며 당시 유충렬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전달했다는 5000만원 지폐뭉치의 사진을 공개했다.

장 주무관의 폭로에 반응했던 언론은 오마이뉴스와 한국일보 법조팀 정도였다. 대부분 주류매체는 한 발 늦었다.

하지만 권력은 내부고발자를 그만두지 않았다. 권력은 그도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가담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도 2013년 11월 그에게 유죄를 확정했고 결국 그는 공직을 잃었다.

더 멀리는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령부(현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양심선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전국언론노련과 권영길 당시 위원장이 윤 이병 폭로를 도왔다. 권 위원장은 윤 이병이 가져온 사찰자료를 놓고 심야 대책회의 끝에 한겨레신문에 넘겼다. 곧바로 한겨레는 취재팀을 꾸려 보안사가 서울대 근처에서 운영하던 호프집까지 확인해 보도했다. 이때 한겨레는 창간 2년이 갓 지난 신생신문이었다. 이때도 주류매체는 한 발 늦었다.

그 때 윤 이병이 폭로한 사찰 당한 민간인은 1303명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정치인도 포함됐다. 권력은 윤 이병도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2년형을 선고 받고 출소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윤석양 이병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 1990년 10월7일자 한겨레신문.
▲ 1990년 10월7일자 한겨레신문.

다시 민간인 사찰이 도마에 올랐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 수사관은 조선일보를 통해 연일 폭로거리를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는 18일자 1면에 김태우 전 수사관의 입을 빌려 ‘박형철 靑비서관이 윗선의 지시라면서 盧정부 인사 가상화폐 투자 조사시켰다’고 폭로했다. 김 전 수사관은 조선일보를 통해 ‘고건 전 총리 아들과 변양균 진대제 변양호 정보도 보고했다’고 전했다.

김태우 전 조사관이 이영호 전 비서관인지, 장진수 전 주무관인지 드러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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