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심지어는 두 사람의 오찬에 오른 옥류관 냉면 이야기가 상세히 보도됐다. 어떻게 공수했다더라, 맛은 어떻다더라. 전국의 평양냉면집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통일이 눈 앞에 다가온 듯 모두들 들뜨고 설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사업이 드디어 빛을 발하겠구나 희망을 품던 대북사업가 김호씨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2007년 무렵부터 안면인식기술 개발을 위해 중국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북측 소프트웨어 기술자들과 이메일을 통해 교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통일부의 허가를 받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2008년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어렵게 사업을 이어왔다.

북한의 안면인식기술, 그 외에도 지문인식, 금융 프로그램 등 기술은 이미 해외 사업가들로부터 인정받는 수준이다. 또한 임금이 저렴해 선호도가 높다. 김씨는 이러한 이점을 눈여겨보고 사업에 뛰어든 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4.27 판문점 선언이 있은 지 불과 몇 개월 후인 8월 9일, 그는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오전 7시 자택에서 10여명의 보안경찰들로부터 신정동 보안수사대에 연행돼 구속됐다.

다름 아닌 듣기만 해도 무서운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간 것. 자진 지원, 금품 수수, 통신 회합 등 혐의가 적용됐다. 그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 개발팀으로부터 프로그램을 건네받고, 그에 따르는 보수를 지급한 것 등이 모두 문제가 됐다.

▲ 2018년 10월8일 오전 남북경협사업가 김호씨 등 국보법 증거 조작사건 시민사회 석방대책 위원회와 김호 국보법 증거날조 사건 변호인단 주최로 ‘공판준비기일에 즈음한 석방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당 기자회견에는 김씨 가족과 친지 등도 참석해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민중의소리
▲ 2018년 10월8일 오전 남북경협사업가 김호씨 등 국보법 증거 조작사건 시민사회 석방대책 위원회와 김호 국보법 증거날조 사건 변호인단 주최로 ‘공판준비기일에 즈음한 석방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당 기자회견에는 김씨 가족과 친지 등도 참석해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민중의소리

가족들이 석방을 외치던 여름이 지나고, 이 겨울 그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는커녕 구속 수감된 채로 1심 재판에 임하고 있다.

검찰은 공소장 상당 부분을 김씨의 과거행적, 신변잡기로 채웠다. 그가 과거 운동권 학생이었던 사실,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가입한 사실 등 혐의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간첩’임을 확신하듯 했다.

그러나 재판에 들어서자, 검찰은 당황의 연속이다. 검찰 측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재판에 40여명의 증인을 대거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이 불러 세운 증인들조차 검찰의 공소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검사들은 당황하며 진술 조서를 이리저리 넘겨보고 서로 속삭이기 바쁜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북한 개발팀으로부터 받은 프로그램에 악성코드가 심어져 있어 사이버테러의 위험성이 있다며, 김씨가 이를 인지하고도 국내에 들여왔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김씨 회사와 거래했던 업체 직원들은 법정에 나와 개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검찰은 또 프로그램 개발 하청을 맡기기 위해 방위사업청의 제안요청서 일부를 북한개발팀에 넘긴 것을 두고 국가기밀 누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기 위해 부른 증인들의 말은 달랐다. 그 같은 제안요청서만 보고는 군에서 발주하는 사업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 측에 따르면 민간경비업체에서도 요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증인신문이 반복되는 가운데 검찰이 던지는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북한 개발팀이 참여하는 것을 알았다면 김씨의 회사와 사업을 했겠느냐’라는 것이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안 했을 것 같다”며 북한 기술이 떨어지거나, 나중에 위험부담을 안게 되거나 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결국 검찰은 증인들로부터 북한에 대한 막연한 혐오만을 확인받았을 뿐이다. 평화통일이 논의되는 시점에 이 같은 재판이 매주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아직도 국보법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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