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부잣집 아들’의 주 무대는 광고주인 ‘이바돔 감자탕’ 매장이다. 극중 인물들이 이곳에서 일한다는 설정으로 식당이 드라마에 매번 노출돼 간접광고(PPL)가 도를 넘고 있다. 

‘이바돔 감자탕’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드라마에서 이바돔 감자탕은 광재와 영하가 함께 일하는 로맨틱한 장소로 노출되면서 감자탕은 물론 족발, 등뼈찜, 해장국 등 많은 메뉴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라마 내내 맛있고 재미있는 장면들을 연출할 예정”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광고인 간접광고와 협찬이 도를 넘어 주인공의 직업까지 결정하고 있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가 10월1일부터 14일까지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 18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14개 드라마 주인공들의 직업이 광고주(협찬 포함)와 관련 있었다. 드라마 속에 침투한 광고가 시나리오에도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향후 지상파 중간광고가 도입되는 가운데 ‘지상파 콘텐츠 수준 향상’이란 중간광고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PPL의 감소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모니터 보고서 갈무리.
▲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모니터 보고서 갈무리.

KBS ‘끝까지 사랑’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직업을 바꿔 광고주 회사에서 일하는 대목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주인공 가영의 엄마는 이름 없는 식당을 운영하다 갑자기 ‘맛나 감자탕’을 운영하고 가영이 다니는 회사가 파업 위기에 처했을 때 감자탕을 대접해 극복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정한의 누나는 병 공장에서 일하다 인테리어 회사 ‘영림바스’에 취업한다. 정한의 어머니는 극 초반에는 일을 하지 않았으나 중반부터 ‘3H스마트 지압침대’ 매장에서 일한다. 현기는 직장을 옮기면서 의류매장 ‘올리비아 로렌’에서 일한다.

KBS ‘하나뿐인 내편’은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준비를 하던 주인공이 ‘본죽’의 비서실에서 일한다는 설정으로 신메뉴 개발, 도시락 시식, 사내 신제품 공모 등을 이유로 본도시락 상품을 노출했다. SBS ‘나도 엄마야’는 주인공 윤지영이 영어유치원 교사에서 ‘TS 코스메틱’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꾼다. MBC ‘내 뒤에 테리우스’는 국정원 요원들이 위장 아지트로 핸드백 매장 ‘로사케이’를 운영한다는 설정이다. MBC ‘비밀과 거짓말’의 주인공들은 하남동래복국 식당, 잠언의료기 매장을 운영한다.

드라마 앞뒤나 중간에 나오는 광고가 방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코오롱 스포츠의 리버서블 제품 광고에 배두나가 출연하는데, 최근 종영한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도 배두나가 같은 제품을 입고 등장한다. 극 중에서 배두나는 옷에 잉크가 묻자 뒤집어 입는 장면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시청자시민운동본부는 “간접광고와 일반 광고까지 전방위 편성을 통해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주인공 배두나는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코오롱의 신상 옷을 입고 등장한다. 해당 제품의 광고 모델은 배두나이며, 이 드라마 앞뒤에 드라마와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광고가 나온다.
▲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주인공 배두나는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코오롱의 신상 옷을 입고 등장한다. 해당 제품의 광고 모델은 배두나이며, 이 드라마 앞뒤에 드라마와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광고가 나온다.

드라마에서 특정 제품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부각하는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시청자시민운동본부는 “모든 드라마 배경 중 주방이 배경이면 W정수기가 노출되고 고기를 구울 땐 어김없이 자이글 파티가 등장하며 거실에는 안마의자, 삼성에어컨, LG에어컨, 다이슨 공기청정기와 무선 진공청소기 등이 수시로 단순 노출되도록 배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과도하게 언급하는 방식으로 극의 흐름을 깨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KBS ‘끝까지 사랑’은 광천 새우젓을 보여주며 양념 없는 깨끗한 새우젓이라고 강조하고 MBC ‘비밀과 거짓말’에선 하남동래복국 식당에서 “여기 뭐가 맛있어요”라고 묻고 메뉴를 일일이 설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MBC ‘숨바꼭질‘에는 화장품 회사 상품 관련 회의 중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시리즈별로 수분력과 커버력을 보강한 황금비 쿠션”이라며 광고주 제품을 소개하는가 하면 SBS ’나도 엄마야’에선 등장인물이 식당 주방일을 못하게 되자 ‘청춘연가’ 본사에서 주방장 파견 제도가 있어 걱정없다는 설명이 대사로 나온다.

이 같은 내용은 방송심의규정 위반 소지가 크다. 방송심의규정은 특정 제품과 기업, 영업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의도적으로 부각해 ‘광고효과’를 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단순 노출이 아니라 제품을 구체적으로 시연하거나 해당 제품만의 특징과 장점을 소개하는 경우 방송사 재허가 심사에 반영되는 중징계인 법정제재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 지나치게 많은 광고가 몰린 이유는 제작비 충당을 위해 무리하게 간접광고와 협찬을 유치해서다. 모니터 대상 17개 드라마의 평균 제작지원업체(PPL 광고주)는 6곳, 협조업체(협찬 광고주)는 51곳으로 나타났다. MBC ’베드파파’의 경우 제작지원사와 협조업체가 모두 113곳에 달했다.

이처럼 광고가 과도한 상황에서 방통위는 지상파에 중간광고를 허용했다. 2016년 10월 한국PD연합회는 지상파 PD 85.3%가 “협찬과 간접광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광고를 해용해야 한다”고 응답한 설문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시청권 침해 요소가 크지 않은 중간광고를 도입해 간접광고와 협찬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한국방송협회와 지상파3사가 내놓은 중간광고 도입에 따른 대국민 약속에는 간접광고 및 협찬 문제 개선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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