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과 조선일보 기자가 김태우 전 수사관의 주장을 바탕으로 민간인 사찰 의혹 보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김의겸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민간인 사찰 개념을 정의하고 조선일보 보도에 따른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하자 이에 조선일보 기자가 반박하면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김 대변인은 “‘민간인 사찰’이라고 하면 과거 정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첫째,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지시에 따라 둘째,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셋째, 특정 민간인을 목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변인은 시중 은행장의 비위 첩보와 전직 총리 아들의 사업체 현황 첩보를 언론이 김태우 수사관의 주장을 받아 민간인 사찰을 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중 은행장 첩보의 경우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특감반원이 임의로 수집했다. 그나마 보고를 받은 반장이 감찰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해 바로 폐기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전직 총리 아들 개인 사업 첩보와 관련해서는 국가 사정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실의 정당한 업무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가상화폐 대책을 세웠던 지난해 12월은 과열 투기 양상이 나타나고 각종 범죄수단으로 가상화폐가 사용돼 다수의 피해가 발생될 우려가 높았고 범여권 일부 인사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가상화폐 거래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상화폐 거품이 꺼질 경우 정부 불신이 커지고 가상통화에 투자했던 국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 반부패비서관실은 가상화폐 폐해를 막기 위한 정책 수립 필요성을 느껴 가상화폐 동향과 불법행위 및 피해 양상 등을 기초 자료로 수집했고 주요 인사들이 가상화폐 관련 단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폈다.

김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우리사회에서는 가상통화가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이며 양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청와대 안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 가상화폐의 문제점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대책을 세워 나간 곳이 반부패비서관실”이라며 “가상화폐 관련 정책을 만들기 위해 그 업계의 기초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요건이다. 이걸 ‘민간인 사찰’이라고 하면 그럼 정부 내 이견을 지닌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정부 정책은 무엇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신경전은 김의겸 대변인의 공식 발표가 끝나고 벌어졌다. 조선일보 기자는 “민간인 사찰을 세가지로 정의했는데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이냐”라고 물었고 김 대변인은 “과거 정부 사례에서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선일보 기자는 “민간인 사찰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감찰반원이 직무 범위를 벗어나 민간인 정보를 수집하는 게 감찰이 맞냐 안 맞냐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김의겸 대변인은 “오늘 (조선일보)보도를 보면 민간인 사찰이란 용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고 하자 조선일보 기자는 곧바로 “어디에 등장하느냐”고 되물었다.

김 대변인은 “아침 신문자 가지고 있는 거 없나”라며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민간인 사찰이라고 표현했다. 그 자체를 전제로 하지 않은 질문에 답변을 드릴 방법이 없고, 과거 민간인 사찰이라고 하는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여러 건에서 (민간인 사찰 정의를) 도출해낸 결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기자는 “오늘 기사를 보면 민간인 사찰이란 표현이 없다. 직무 범위를 벗어나서 민간 정보를 수집한 게 만간인 사찰이 없다고 했던 정부에서 감찰반이 민간인 정보를 수집한 게 아니냐는 문제다. 기사에 이런 표현이 없다”고 맞섰다. 김 대변인은 결국 “자구에 대한 해석의 문제인 것 같다. 저희는 (민간인 사찰 의혹 보도라고)그렇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이날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이례적으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정면충돌한 것은 보도 내용의 민감성 때문이다.

조선일보 보도대로 민간인 사찰 성격의 행위가 있었다면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금지하고 정부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해왔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명분이 사라지고 정부 불신으로 확산될 수 있다.

과거 남북관계 이슈 등 여러 의혹 제기와 달리 이번 사안은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의 정당성이 통째로 흔들릴 내용이다. 야권에선 이번 의혹에 과거 국정농단 사건과 비교해 청와대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집권 3년차 국정운영이 탄력을 받을지 상실로 이어질지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인 셈이다. 청와대 대변인과 조선일보 기자와 공방도 이 같은 배경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조선일보는 연일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18일 조선은 “청와대 특감반은 반부패비서관의 지시로 전(前) 정부 고위 공직자 등 민간인들에 대한 재산 정보 수집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감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정수석실이나 반부패비서관실의 조직적 사찰 활동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민간인 사찰’이 있었다고 기정사실화하는 내용이다.

다른 기사에선 “특감반 ‘비위 의혹’ 당사자로 지목돼 검찰에서 감찰 조사를 받고 있는 김태우 수사관은 이날 ‘작년 말 비트코인(bitcoin) 등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 여부를 두고 국민 여론이 들끓었을 때 박 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가상 화폐 소유 여부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면서 “김 수사관은 이 지시에 따라 고건 전(前) 국무총리 아들 고진씨, 변양균 전 정책실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 노무현 정부 고위 공직자나 그 가족의 가상 화폐 투자 동향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시 민간인 신분이었다”고 보도했다. 17일에도 조선은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고위직 감찰과 무관한 민간인을 조사하고 보고했다면서 김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보고서 목록을 공개했다.

이에 청와대는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반박하면서 언론에 대해 강한 유감을 여러차례 밝혔다. 일례로 “올해 재활용 쓰레기 대란 사태를 놓고 환경부가 잇따라 실책을 하자 윗선으로부터 김 전 장관 경질을 위한 첩보 생산 지시가 반복적으로 내려왔다”는 김태우 수사관과의 통화 내용을 전한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당시 부처 간 엇박자가 있다고 지적하고 환경부 장관 교체설 보도를 쏟아낸 게 언론이 아니었느냐는 불멘소리가 나왔다. 언론의 지적대로 동향을 살펴보기 위한 지시였지 누구를 찍어내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 수사관이 참여정부 인사들의 가상 화폐 소유 여부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당시 가상화폐 투기 과열을 지적하고 근절 대책을 세우라고 했던 것도 언론이었는데 근절책을 마련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한 것을 두고 이제와 민간인 사찰 의혹이라고 한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공방에 대해 “조선일보가 적극적으로 의혹 제기 수준에서 여러 가지 보도를 하다보니 청와대도 불가피하게 조선일보를 특정해 대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의혹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고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기도 하지만 터무니 없고 흠집을 낼 의도가 있다면 문제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김태우 주장을 독점적 정보로 받아서 보도를 하게 되면 반드시 추가 취재를 하고 반론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김 수사관의 주장을 폭로성으로 보도하면 김 수사관은 자기중심적으로 애기할 수밖에 없다. 진실의 타당성, 반대 의견 이런 부분까지 보도해주는 게 균형감있는 보도인데 현재 선정적으로 김 수사관의 주장 내용을 제목으로 뽑고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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