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고 이제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괴롭혀온 것은 비단 가해자뿐 아니라 전 사회였다”(서지현 검사, 지난 13일 경향신문 인터뷰)

지난 1월29일 서지현 검사는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미투(Metoo, 나도 말한다) 운동에 불을 지폈다. 그가 1년 가까이 지나 꺼낸 말은 ‘성폭력은 성별 갈등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올 한해 미투 운동이 “‘성폭력은 피해자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라는 당연한 상식을 사회적 합의로 만든”(진명선 한겨레21 기자) 성과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흘러가진 않았으며 여기엔 언론의 책임”(박다해 한겨레 기자)도 있다.

▲ 서지현 검사가 지난15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환경재단 16주년 '후원의 밤' 행사에서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진실 분야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서지현 검사가 지난15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환경재단 16주년 '후원의 밤' 행사에서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진실 분야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각국의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보면 성폭력을 유발하는 젠더 위계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피해자를 낙인찍지 않으며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 편견이 어떻게 작용할지 성찰하며 기사를 써야한다는 게 핵심이다. 대다수 언론이 미투 보도 과정에서 이를 잘 지켰다고 보긴 어렵다. 공개 인터뷰로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을 때 다수 언론은 관성대로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발언을 담아 기계적 중립을 취하거나 자극적인 요소를 뽑아내 썼다.

기계적 중립, 미투 보도의 적

반론 취재가 사실 확인을 위한 작업일 순 있지만 기계적 균형이 공정한 보도라고 볼 순 없다.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 쪽에 유리한 물증이 많지 않아 양쪽을 비슷한 분량으로 다루더라도 가해자에게 유리한 보도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보도는 권력구조의 문제를 은폐하고 문제를 성별 갈등으로 대신한다. 최이숙 동아대 교수는 “기계적 중립주의는 ‘가해자vs피해자’ 프레임에 갇힌 기사를 양산한다”며 “성폭력이 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임을 고려할 때 자연스레 양성갈등 프레임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실공방을 보여줄 때 양측은 동등한 권한을 가진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사법제도조차 기울어졌다고 판단해 언론에 힘을 빌었는데 언론에서 기계적 중립으로 접근할 경우 피해자는 숨게 된다. 최 교수는 “가해·피해의 형식적 객관주의도 피해자가 증언하는 순간에만 적용된다”며 “사건 공개로 피해자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심층 탐구는 서지현 검사를 제외하곤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입을 닫았을 때 보도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얼마나 괴롭게 사는가’로 흐르기 마련이다.

▲ 성폭력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은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 성폭력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은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편집=이우림 기자

올 한 해 미투보도의 척도는 안희정 사건이다. 박다해 기자는 “재판부가 안희정 증언만 공개하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논의를 했어야 한다”며 “결국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사안에서 한쪽 이야기만 보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한겨레21의 ‘안희정 재판 피해자 측 입장 보도’를 양성평등미디어상 최우수상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피해자 측에서 “재판은 비공개하더라도 변호인이 정제된 언어로 피해자 주장을 브리핑하는 등 전략수정을 고민할 필요”(박보희 머니투데이 기자)도 있다.

성폭력이 권력형 범죄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주간지 기자는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남자기자들이 군대에서 경험한 성범죄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남성의 피해·동성 간 피해에도 집중해 성문제가 아니라 권력문제라는 걸 보여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당했다, 나도 말한다

미투 운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만 봐도 언론의 문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초기에 언론은 미투를 ‘나도 당했다’로 번역했다. 자연스레 미투 운동을 분석하기 보단 피해자가 어떻게 당했는지, 고통에 초점을 두게 된다. “많은 ‘단독’들은 가해자의 이름만 가리면 하나같은 비슷한 사례를 선정적이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일”(장일호 시사인 기자)에 그치게 된다.

홍주현 국민대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서 검사가 JTBC와 인터뷰한 1월29일부터 4월5일까지 미투 관련 방송보도를 모니터링한 결과 “지상파 121건, 종편 104건 등 전체 225건 중 사회문화제도 측면에서 미투 운동을 분석한 기사는 없었다”고 밝혔으며 “유명인의 성범죄를 자세하게 묘사해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사실 확인보다는 제보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는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장일호 기자는 “가해자를 ‘날리는’데 집중하기보다 가해가 불가능하도록 문화를 바꾸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 상황에 집중하므로 피해자를 수동적이고 고통 받는 이미지로 묘사하는 경향도 있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강민주 CBS PD가 인터뷰 때마다 제작진에게 “화면에 예쁘고 당당하게 나오고 싶다”고 말한 이유다. 경향신문 기획기사 ‘미투의 혁명, 혁명의 미투’를 함께 쓴 김지혜 기자는 “피해자가 두려워하며 웅크리고 있는 이미지가 기사에 많이 나왔는데 그만큼 언론사들도 관행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써왔다는 뜻”이라며 “여성을 주체로 그린 이미지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건 12월 현재에도 미투를 ‘나도 당했다’라고 기재한 언론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예 미투를 ‘성범죄’로 해석해 ‘미투 가해자’, ‘미투 피해자’와 같은 용어도 기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장일호 기자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말한다’로, 공론장을 만드는 움직임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투를 ‘나도 말한다’로 해석하면 ‘미투 폭로’와 같은 자극적인 표현도 사라진다.

▲ 여전히 미투를 '나도 당했다'로 번역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 여전히 미투를 '나도 당했다'로 번역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투를 ‘나도 말한다’로 보면 언론의 역할이 선명해진다. 이희은 조선대 교수는 “미투 운동은 스스로 타자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기존 미디어의 고통 재현과 차이가 있다”고 표현했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다수와 적대관계로 돌아설 위험을 감수하며 시작됐다. 이는 비슷한 입장에 처한 이들을 묶어내는 공적 성격이 있다. 언론 보도는 이를 지원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장일호 기자는 “여성들이 ‘연대할 존재’를 발견한 점이야말로 미투 운동의 놀라운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미디어에 등장하는 모든 목소리는 근본적으로 권력 비대칭적”이라며 “어떤 것이 옳거나 크거나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게 사라지려 하거나 보이지 않을 때 미디어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투 운동에서 언론은 윤리를 고민해야 하고 명료한 권력자의 말보다는 복잡한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에서 언론이 피해자의 고통을 어떻게 재현했는지도 참고할 만하다. 지난해 10월12일 CNN은 배우 캐서린 켄달이 출연해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입은 성폭력을 고백했다. 앵커는 피해자인 출연자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편하게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설명하고 앵커는 그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만 보였다. 분할 화면에는 여성 앵커와 캐서린 켄달이 함께 등장해 정면을 응시하게 카메라를 잡았다. 같은 여성으로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구성했다. 취조하듯 사실관계를 따지는 한국 언론과 차이를 보인다.

▲ CNN 미투 관련 인터뷰 화면 갈무리
▲ CNN 미투 관련 인터뷰 화면 갈무리

미투 이후 언론의 책임

언론사가 직접 피해자와 연대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의 정봉주 성추행 보도가 한 사례다. 김지혜 기자는 “피해자 안젤라씨를 익명으로 보호하면서 진술의 신뢰성을 언론이 대신 짊어졌다는 점에서 좋은 보도였다”며 “정봉주와 법정 공방이 오갈 때도 피해자는 끼지 않았고 언론사와 정봉주가 다퉜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려워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던 미투 참가자의 처지를 고려해 언론이 때론 막중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언론사 입장에선 특종 한번하고 지나갈 일이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일이 평생 기록으로 남는 중대한 사안이다. ‘더 센 사례 없느냐’고 찾던 일부 방송사를 차치하더라도 의미 있는 보도를 했던 언론에도 필요한 말이다. 박보희 기자는 “JTBC는 인터뷰할 사람들이 법원으로 갈 줄 예상했을 텐데 인터뷰 전에 이를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문”이라며 “김지은씨 경우도 안희정 쪽에서 법적 대응하니 여성단체나 변호사들이 뒤늦게 모였다”고 아쉬워했다.

미투 국면이 지나고 나서야 언론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 경제지 기자는 “미투 보도 이후 사내 분위기가 변했다”며 “예전에는 일단 쓰는 식이었다면 이젠 2차 피해를 신경 쓴다”고 말했다. 한 주간지 기자는 “미투 아이템 회의를 하면서도 ‘우리 회사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며 각성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올 한해 언론계의 분위기를 잘 정리한 건 진명선 기자였다. “미투를 보도한 기자들이 사회를 많이 바꾸었나. 그렇지 못했다 해도 (미투가) 기자들을 많이 바꿨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미투 기사를 쓴 기자들은 다시 예전에 썼던 방식으로 기사를 쓰진 않을 것 같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많이 깨졌고 누구보다 빨리 바뀌었고 미투라는 역사를 받아들였다.”

나쁘게 보면 여전히 기자 개인 역량에 의존한다는 뜻이고 좋게 보면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있다는 소리다. 성범죄보도 가이드라인은 미투 운동 국면에서 온전히 작동하지 않았고, 몇몇 기자들이 깨닫고 지키려 했다. 여전히 미투 운동이나 젠더권력 문제를 보도하는 기자들은 사내에 정해져있고, 미투 운동 이후 나아진 건 소위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라는 낙인이 줄었다는 안도감이다. 언론은 사회보다 먼저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사회 변화를 뒤에서 쫓고 있다.

※ 참고자료

이종임, 해외 언론에 나타나는 미투 운동의 명암
이희은, 페미니즘 운동과 미디어 윤리
최이숙, 백일 넘긴 미투 운동 보도…우리 언론 성장했나?
홍주현, 미투 운동에 나타난 방송 보도의 선정성과 방송의 선정성 해결방안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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