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의 동의 없이 해당 사건을 보도한 SBS가 해당 기사를 삭제하라는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 결정에 불복하고 성희롱 피해자 A씨와 민사소송에 돌입했다. SBS는 해당 기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 했고, A씨 관련 부분은 사실이므로 보도의 공익적 측면이 A씨 사익에 비해 커 기사를 삭제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SBS는 지난 4월 한 기업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을 보도했다. ‘최근 회사를 떠난 A씨가 퇴사 과정에서 고위 임원의 접대성 술자리 참석 강요사실을 털어놨다’ 등의 내용을 전했다. 다수 언론이 A씨를 제보자로 파악한 채 SBS 기사를 인용했다. 해당 기업 관계자들도 A씨에게 연락해 사실관계를 추궁했고, 심지어 가해 임원이 A씨에게 전화해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 SBS 뉴스 로고
▲ SBS 뉴스 로고

사건을 알릴 생각이 없었던 A씨는 자신이 제보자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다. A씨가 회사에서 활동할 당시 사진이 퍼졌고, 포털 사이트에서 기업이름과 초성만 입력해도 A씨의 이름이 검색되기도 했다. 지난 6월말 A씨는 언론중재위에 기사삭제를 요청했고, 언론중재위는 지난 8월 SBS에 기사를 삭제하고 3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언론중재위는 SBS의 보도를 인용한 5군데 매체에도 기사삭제 결정을 내렸다. SBS는 이에 불복했다.

[관련기사 : 성희롱 피해자 동의 없었던 SBS 성희롱 보도]

언론중재위원회 심의기준 제4조를 보면 언론은 성폭력 피해당사자의 동의 없이 그가 누군지 알게 보도해선 안 된다. A씨 측은 이를 근거로 자신의 명예권·인격권이 침해됐으니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명예를 위법하게 침해당한 자는 손해배상 뿐 아니라 현재 발생하는 침해를 막고 향후 발생할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이를 막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A씨 측은 준비서면에서 “언론사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한 채 오로지 시청률 상승과 대중의 관심을 받겠다는 목적으로 선정적인 표현인 ‘단독’이라는 부제를 붙여 피해자인 원고를 만천하에 드러내 망신을 줬다”며 “회사와 가해 임원, 친분 없는 동료나 지인, 일반인(악플) 등에게 ‘배신자’ ‘제보녀’라는 오명과 비난을 받도록 집중 조명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A씨는 불특정 다수인에게 이유 없이 비난받고 있다는 불안감에 떨었고 보도 이후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며 상담 내용과 심리검사결과를 법원에 제출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겪을 사회적 비난이 싫어 공론화하지 않은 채 회사를 떠났는데 SBS가 이를 보도해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A씨가 회사에 다닐 당시 회사에선 술자리 참석 강요나 술을 따르도록 하는 행동이 있었는지 자체 감사가 있었고, 이후에는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SBS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과거에 끝난 미성숙한 술 문화를 새로 끄집어 미투 열풍으로 온 세상의 관심이 지목된 상황에서 허위를 첨가해 자극적으로 게시했다”며 “보도의 공공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기사 삭제와 50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 서울 목동에 위치한 SBS 본사. 사진=연합뉴스
▲ 서울 목동에 위치한 SBS 본사. 사진=연합뉴스

이에 SBS는 언론중재위 결정 이후 논란이 된 부분을 일부 수정하고 소송 절차에 돌입했다. SBS 측 준비서면을 보면 기사의 일부 오류는 보도 직후 A씨에게 확인을 거쳐 수정했고 A씨도 기사수정에 동의했으니 A씨의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당 보도가 A씨만이 아닌 다수 피해자를 보호하고 추가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A씨의 사익보다 더 큰 공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SBS 측은 만약 인격권을 침해해 정신적인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A씨의 과실이 있으니 손배액을 감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가 기사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지만 약 3개월(4월초 보도, 언론중재위 구제신청은 6월말)간 기사가 계속 게시되도록 방치한 과실이 있다는 주장이다. SBS 측은 이를 근거로 위자료가 2분의 1까지 감액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보도 직후 SBS 취재기자에게 기사 삭제를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관련 사건 일지를 준비해 언론중재위에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SBS측은 A씨가 이 사건 보도 이후 해당 기업에 자신이 입은 피해보상을 요구했고 이를 지급받은 사실을 거론했다. 이를 “A씨가 보도로 인해 얻은 이득”이라며 손해를 산정할 때 이를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