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수사기관의 방조 하에 성장하던 불법 파견·도급 시장이 관리감독 사각지대인 온라인 구인사이트를 만나 더욱 전문화된다는 연구가 나왔다. 파견업체의 직업소개소 겸직이 속출하는가 하면 불법 직업소개소가 난립하고 일자리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불법 중개가 활개치고 있다.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17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파견법 20년, 노동시장은 어떻게 바뀌었나’ 토론회에서 지난 3개월 간 진행한 민간·공공 직업정보제공기관 공단지역 구인광고 669건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 사진=민주노총
▲ 사진=민주노총
▲ 17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파견법 20년, 노동시장은 어떻게 바뀌었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파견법 20년, 노동시장은 어떻게 바뀌었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노동자 파견은 1998년 전까지 근로기준법의 중간착취 금지 원칙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노조(항운노조)에 의한 파견을 제외하곤 금지했다. 1998년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으로 법에 적힌 업종에 한해 파견이 허용됐고 20년이 지났다. 박 연구원은 그동안 “‘단순형→전문형→복합형 불법파견’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이 분류한 단순형 파견은 원청 사업주와 관계가 ‘일대일’이고, 전문형은 ‘일대다’다. 박 연구원은 “단순형이 고전적 ‘바지사장’에 가깝다면, 전문형은 콜센터·물류 포장 등 특정 분야를 맡는 등 실질적 기업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복합형은 ‘업종을 불문한 전문형’이다. 자동차 부품, 디스플레이, 반도체, 식품, 물류 등 산업을 막론하고 동시다발적으로 고용하는 식이다. 사람인 등 구인사이트엔 “도급 전문 업체”란 우스꽝스러운 말도 나돈다. 박 연구원은 “합법 도급업체면 그에 맞는 생산설비, 설비관리기술을 자체 보유해야 하는데 자본금이 겨우 2~5억원이다.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인력공급사업일 뿐”이라 했다.

▲ 한 구인사이트에 올라온 파견업체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문의한 녹취내용. 사진=토론회 자료집 중
▲ 한 구인사이트에 올라온 파견업체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문의한 녹취내용. 사진=토론회 자료집 중

복합형은 조상 대상 중 절반을 넘는다. 파견·도급 409건 중 218건(53.3%)이다. 이 중 구직자에게 일할 회사를 숨기는 곳이 흔하다. “회사가 어디냐”는 문의에 “기계가공하는 회사다” “이름은 나중에 알려준다”고 답하는 식이다. 박 연구원이 조사 중 겪은 실례다.

전체 669건 중 절반에 달하는 310건(46.3%)이 구인사이트에 사용주 정보를 적지 않았고, 추가 전화문의에도 끝까지 회사명을 비공개한 업체만 65곳이다. 이유는 ‘위장도급’ 혐의 때문이다. 법상 파견이 불가능한 업종에서 직접 채용을 피하기 위해 쓰는 꼼수로, 도급을 이용해 노동자를 간접 사용한다.

사용자가 직접 채용하거나 직업중개소를 통해 채용하는 건 단순한 고용관계다. 파견법 제정 이후엔 파견업체나 위장도급업체를 통한 ‘1차 간접고용’이 횡행했다. 박 연구원은 “현재 공단 노동시장은 더 중층화됐다”며 삼·사중구조 간접고용 유형을 추가했다.

직업소개소를 겸한 파견업체가 그중 하나다. 구직자가 ‘직업소개소→파견업체→도급업체’를 모두 거친 경우만 11건이 발견됐다. 이마저 불법으로 얼룩졌다. 조사대상 직업소개소 167건 중 ‘합법(등록) 업체’는 79건, 불법(미등록) 업체는 88건이다. 합법 업체 중 9건이 파견업체를 겸했고 불법 업체는 21건이 겸업했다.

▲ 불법 직업소개소 및 파견업체 겸업 실태. 사진=토론회 자료집 중
▲ 불법 직업소개소 및 파견업체 겸업 실태. 사진=토론회 자료집 중

박 연구원은 “파견과 직업소개사업, 도급이 경계 없이 이뤄지면 직업소개사업에 부여된 최소한 공익 역할이 줄어들 뿐 아니라 파견을 제한하는 법조차 무력화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파견과 직업소개 기능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파견법을 적용하려 들면 직업소개행위를 했다고 빠져나가고 직업안정법을 적용하면 파견을 했다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 연구원은 실태 원인으로 “파견업체, 유료직업소개소들이 노동력 중개 과정에서 이익을 편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개발했다”고 봤다. 그는 “이들은 직업정보를 적극 제공하고, 파견이 안 되는 다양한 직업군 노동시장에까지 끼어들 뿐 아니라 이젠 채용도 부분 대행하면서 수익기반을 넓혔다. 가장 신속히 구인자와 구직자를 연결시키면서 저임금 장시간 일자리를 지속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채용광고가 각종 구인사이트에 아무 제재 없이 오르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국가의 고유 책무다. 직업소개·직업정보제공업은 본연의 공익성에 대한 업무상 원칙을 위배해선 안된다”며 “사용주에 대한 필수 정보 공개 의무, 직업소개사업과 파견·도급사업 겸직 금지 등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구인자를 비롯해 직업소개 및 직업정보제공사업자에 대한 처벌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이들이 불법파견마저 중개한 상황은 과거 소리바다의 ‘플랫픔을 통한 저작권 침해 방조 사건’과 유사하다. 불법파견의 방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16일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업체 지도 감독을 강화할 것과 직업정보제공사업자 준수사항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 밝혔다. 이경제 고용노동부 차별개선과 서기관은 “권리를 보호받으려면 당사자가 인식하고 있는 게 중요한데 이 부분이 열악한 상황이다. 현장 당사자들에 대한 노동관계법 교육이 정책의 중요한 한 축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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