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018 올해의 인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도 목소리를 낸 언론인들을 선정했다. 타임지는 ‘수호자들과 진실에 대한 전쟁’(the guardians and the war on truth)이라는 문구를 넣은 표지로 이들을 기렸다.

타임지는 ‘진실의 수호자’로 4명의 언론인과 1개 언론사를 꼽았다. 사우디 왕실의 부패를 고발하다 지난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 사태를 보도한 뒤 현지 당국에 체포돼 수감 중인 ‘로이터통신’ 기자 와 론(Wa Lone)과 초 소에 우(Kyaw Soe oo),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독재 참상을 비판하다 기소된 온라인 언론 ‘래플러’ 마리아 레사(Maria Ressa) 대표, 지난 6월 편집국 총격사건으로 언론인 5명이 사망한 미국 메릴랜드주 지역신문 ‘캐피털 가제트(The Capital Gazette)’ 등이다.

에드워드 펠센털(Edward Felsenthal) 타임 편집장은 현지 시각으로 11일 “12월10일을 기준으로 2018년 최소 52명의 언론인이 살해됐다”며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들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싸움을 대표한다”고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 배경을 밝혔다. 올해의 인물로 여러 인물 및 단체가 선정된 사례는 2014년 ‘에볼라와 싸운 사람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자 등 사례가 있으나, 고인(故人)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자말 카슈끄지. 사진=TIME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자말 카슈끄지. 사진=TIME

사우디 왕실 부패 고발하다 美 망명…혼인 신고하려다 ‘피살’

자말 카슈끄지는 사우디 영자신문 ‘사우디 가제트’ 미국 특파원을 시작으로 ‘아샤라크 알아우사트’, ‘알 하야트’ 등을 거쳐 중동권 최대 영자 신문 ‘아랍뉴스’ 부편집장을 지냈다. 지난 2003년 개혁 성향 일간지 ‘알와탄’ 편집국장에 올라 이슬람 근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다 2개월 만에 하차, 2007년 복귀했으나 3년 만에 해고됐다. 지난해 미국으로 사실상 망명해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게재해왔다. 지난 10월2일 터키인 약혼녀와 혼인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 살해됐고, ‘사우디 왕실 배후설’이 제기됐다.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수사 중인 터키 당국이 최근 용의자 체포에 나섰으나 사우디 측은 범죄인 인도를 거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월 자말 카슈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공개를 보류했던 그의 마지막 칼럼을 공개했다. “아랍세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What the Arab needs most is free expression)”라는 제목의 칼럼은 2011년 ‘아람의 봄’ 이후 정부의 정보 검열에서 해방될 거란 기대가 무너지고 오히려 후퇴한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아랍 국민들은 가난, 독재정치, 열악한 교육 환경으로 고통 받고 있다”며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증오를 확산시키는 국수주의적 정부의 영향에서 독립된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포럼을 창설해 아랍의 평범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임지는 “모든 폭군들은 사람들의 두려움 속에서 산다”며 “진정한 힘을 보려면 개인이 감히 그들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묘사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로이터통신 기자들. 사진=TIME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로이터통신 기자들. 사진=TIME

‘감추고 싶은’ 정보 전했다는 이유로 체포, 구금

미얀마 국적의 로이터통신 소속 와 론 기자와 초 소에 우 기자는 지난 9월 공직비밀법, 뉴미디어법, 미디어 행동강령 위반 등 혐의로 7년 형을 선고 받아 지난해 12월12일부터 수감 중이다. 미얀마군이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10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을 취재하던 이들은 지난해 한 마을에서 경찰관으로부터 극비 문서를 건네받은 뒤 체포됐다. 미얀마 당국은 이들이 국가 기밀을 담은 문서를 해외 기관에 전송하려 했다고 밝혔지만, 로힝야족 유혈 사태들을 보도해온 외신에 대한 언론탄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기자들을 만나 문건을 넘겨받았던 경찰관은 법정에서 이 같은 일이 ‘윗선’ 지시에 따른 함정수사라고 폭로한 바 있다.

타임지는 “올 한 해 다른 사례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방글라데시 사진작가 샤이둘 알람은, 수도 다카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관련 인터뷰에서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비난한 뒤 100일 넘게 수감됐다. 수단의 반 경제정책 시위를 취재하던 프리랜서 기자 아말 하바니는 34일 동안 감금되고 전기봉으로 구타를 당했다. 브라질의 패트리샤 캄포스 멜로 기자는 자이르 보우소나로 대통령 당선자가 지지자들의 왓츠앱(WhatsApp) 허위 뉴스 유포 캠페인에 자금 지원을 했다고 보도한 뒤 위협의 표적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즈 아시아 편집장 빅터 말렛은 홍콩 외신기자클럽에 정부 의사에 반하는 운동가를 초청했다는 이유로 비자 갱신을 취소당했다. 언론인보호위원회(The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투옥된 언론인은 지난해 기준으로만 총 262명에 달한다.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마리아 레사 필리핀 '래플러' 편집장. 사진=TIME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마리아 레사 필리핀 '래플러' 편집장. 사진=TIME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미국 메릴랜드주 '캐피탈 가제트'. 사진=TIME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 진실의 수호자들'로 선정된 미국 메릴랜드주 '캐피탈 가제트'. 사진=TIME

사실 보도 이유로 소송 내몰리고 목숨 잃은 언론인들

마리아 레사는 2012년 설립된 필리핀 유력 온라인 매체 ‘래플러’ 설립자 겸 편집인이다. 래플러는 휴먼라이츠워치 추산 1만2000명의 사망자를 낸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소탕 작전’ 및 사법 살인 연대기를 기록했다.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후 가짜 페이스북 계정 등이 ‘친(親) 두테르테’ 뉴스를 퍼뜨렸다는 의혹도 제기한 바 있다. 타임지는 “그 대가로 마리아 레사는 정부의 법적 소송과 1시간에 90통에 이르는 폭력적인 소셜 미디어 메시지를 받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정부는 지난 1월 래플러가 외국인의 언론 소유 금지 조항을 어겼다며 운영 허가를 취소했고, 지난달 마리아 레사 대표를 징역 최대 10년형의 탈세 혐의로 기소했다. 타임지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권과 언론의 자유 사이에 있는 민주주의의 불빛이 매우 혼란스러워졌다”는 레사의 말을 전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 지역 신문인 ‘캐피털 가제트’는 지난 6월28일 30대 남성의 총격을 받았다. 용의자는 2011년 본인이 스토킹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고 보도한 캐피털 가제트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고, 거듭 기각되자 앙심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로버트 히아센 부편집장, 제럴드 피슈먼 사설면 편집자, 존 맥나마라 기자, 레베카 스미스 영업 지원 담당, 웬디 윈터스 특별 출판 담당 등 5명이 사망했다. 메릴랜드주를 대표하는 ‘더 볼티모어 선’ 그룹 소유인 캐피털 가제트는, 1727년 창간한 ‘메릴랜드 가제트’ 명맥을 이어 온 유서 깊은 신문사로 꼽힌다. 미국 CNN은 “9·11 테러 이후 언론인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라고 이 사건을 보도했다. 사건 발생 이후 지역 주민 1000여명은 사망한 기자들을 기리며 ‘애너폴리스스트롱(#AnnapolisStrong)’이라 적힌 손팻말과 함께 촛불 집회를 가졌다.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최종 후보 6인에 이름을 올린 문재인 대통령. 사진=TIME
▲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2018' 최종 후보 6인에 이름을 올린 문재인 대통령. 사진=TIME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5위, 문재인 대통령 평가는

한편 국내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자 명단에 오른 사실을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타임지가 공개한 최종후보 6위권 중 5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Donal Trump) 미국 대통령, 로버트 뮐러 (Robert Mueller) 미국 특별검사, 미국 플로리다 고교 총기난사사건 이후 총기 규제를 요구해 온 ‘우리의 삶을 위한 행진’(The March For Our Lives Activists, The Activists), 리안 쿠글러(Ryan Coogler) 영화감독, 메간 마클(Meghan Markle) 영국 해리 왕세자 부인이 최종 후보 6명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지는 문 대통령을 “글로벌 위기를 막기 위해 외교적 도박을 건 한국의 리더”로 규정했다. 타임지는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끌고 북미대화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핵실험 중단을 선언한 북한에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미사일 부지가 운영되고 있다는 의혹이 남았으며 한국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고 짚었다. 타임지는 다만 “한 해가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 보라”며 “2017년 북한은 최소 20개 미사일을 발사하고 6번째 핵실험을 했다. 2018년 핵발전소가 파괴되고 DMZ를 가로지르는 상징적 도로가 연결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 싱가포르, 중국,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며 “적어도 현재로서는 세계가 더 안전하다”고 해석했다.

앞서 온라인 독자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기대를 모았던 BTS(방탄소년단)은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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