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1일 새벽 홀로 밤샘 근무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 김용균(24)씨 참변의 원인이 발전소 핵심업무인 운전‧정비를 외주화한 데 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김씨 노동조건이 원청 소관이 아니라며 회피하고 있다.

김씨는 당일 4~5km에 이르는 현장을 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10일 저녁 6시부터 11일 아침 7시까지 이어지는 밤샘 업무였다. 발전소에서 석탄을 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운행하는 곳에 점검창을 열고 들어가 구조물을 일일이 확인하고, 떨어진 석탄을 줍는 일이었다. 현장점검에 배치된 인원은 1명, 김씨뿐이었다. 김씨가 일한 팀에는 현장 6명, 제어실 6명으로 12명이 일했다.

▲ 11일 새벽 숨진 김용균씨는 당일 오전 열릴 예정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 생전 참가 신청했다. 김씨는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신청 인증사진을 찍었다. 사진=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 11일 새벽 숨진 김용균씨는 당일 오전 열릴 예정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 생전 참가 신청했다. 김씨는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신청 인증사진을 찍었다. 사진=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김씨가 하던 업무는 본래 2인1조가 원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화력발전소에서 정비를 맡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해당 구역은 4~5km에 이르러 1명이 전담하기엔 광범위해 2인1조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가능하려면 인력이 현재의 2배 이상이어야 한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한국발전기술 쪽 현장 운영관리자는 “야간 위험직종에 2인1조 근무하는 게 맞다. 2인1조 수칙을 공공연히 알면서도 라인 범위에 비해 인원이 적기 때문에 1인 근무를 해왔다”고 진술했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2인1조 원칙을 세우고 수행하는 것은 협력업체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원청이 인력규모와 조직도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결정권은 서부발전에 있다고 말한다. 이태성 간사는 “원청이 발주할 때 설계 인원을 미리 정한다. 원청이 개입하는 용역계약서에도 업무 조직도가 분명히 들어간다. 원청은 각 팀에 인원이 얼마나 구성되는지도, 2인1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고서 인력 규모를 설정했다”고 했다.

발전소 운전‧정비 업무는 1977년부터 한전 자회사 한전KPS가 독점해왔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때인 1994년 정부가 경영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정비시장을 민간에 개방했다. 김씨가 일하던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는 서부발전이 2015년 민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과 계약을 맺어 2016년부터 가동됐다. 현장인력은 그대로 두고, 원하청 계약은 3년마다 경쟁입찰로 업체를 바꾸는 방식이다. 민주노총은 11일 낸 성명에서 “김씨가 일했던 업무는 원래 정규직이 했고, 당연히 2인1조였다. 그러나 외주화를 거치며 만성 인력 부족으로 1명이 맡게 됐다”고 했다.

서부발전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안전수칙 서약과 위반 시 벌칙도 직접 적용해왔다. 서부발전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서약서에서 ‘위험인지 시 작업 중지 및 거부권 행사’ ‘작업 전 안전교육 이행’ 등 10개 수칙을 준수하도록 했다. 위반자는 작업현장에서 즉시 퇴출하고 소속 하청업체엔 입찰에 벌점을 부여한다고 명시했다. 서부발전 측은 “정규직 직원에게도 수칙을 적용하고, 지키지 않으면 인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벌칙 서약은 하청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뜻이지만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키기 어렵고, 퇴출 압박감에 시달려 신고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받는 안전수칙 준수 및 위반 시 퇴출·벌점 부과 서약서.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받는 안전수칙 준수 및 위반 시 퇴출·벌점 부과 서약서.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전경. 사진=한국서부발전
▲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전경. 사진=한국서부발전

현장 운영과 정비 등 핵심 실무를 하청업체가 맡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사상사고는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5개 발전사에서 2012~2016년까지 5년 동안 발생한 사고 가운데 97%(346건 가운데 337건)가 하청 업무에서 발생했다. 2008~2016년까지 9년 사이 산업재해로 숨진 40명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37명이었다. 지난해 5개 발전사가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에 제출한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서부발전 내 태안 사업장에서 6명이 작업 중 와이어가 끊어지거나 구조물이 무너지는 등 사고로 숨졌다. 6명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민주노총 등 29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꾸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오후 충남 태안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김군을 죽인 건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라 비용절감을 목표로 안전과 생명, 공공성은 내팽개친 공공기관과 정부”라고 했다. 이들은 “벨트 아래 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라는 업무지시서가 없었다면, 홀로 작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김군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 ‘故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오후 충남 태안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故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오후 충남 태안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은 근로감독관을 보내 사고원인을 현장 조사하고 있다.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태안경찰서는 “2인1조 수칙 등 사측의 관리감독과 사망사고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형성된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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