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7일 최승호 사장 취임은 그 자체가 ‘MBC 정상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10년 가까이 제작 자율성 침해를 호소했던 MBC 구성원들에게 최 사장은 “외압을 막는 방패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공영방송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동안 ‘기레기의 표상’ 취급을 받았던 MBC 취재카메라는 가려뒀던 로고를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최 사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1년 안에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수백억 원대 적자와 준비 없이 맞은 미디어 환경 변화, 파업 참여를 이유로 쫓겨났던 구성원과 파업 기간 불법적으로 채용된 대체인력이 공존하는 MBC가 회복될 수 있을지 우려 섞인 반응도 대다수였다.

취임 1년을 맞은 지금, 콘텐츠 경쟁력은 좀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수백억 원대 적자를 떠안은 상태에서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면서 적자 규모가 1000억 원대로 치솟았다. 플랫폼으로서의 지상파 경쟁력 하락과 동반한 지상파 광고시장 위축은 악순환을 낳고 있다. MBC 조직 내부에서는 ‘MBC의 조직 문화와 DNA가 망가졌다’는 자조가 나온다. 최 사장이 내걸었듯 ‘청산과 재건’을 동시에 잡아야 하지만 어느 하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지난해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MBC에서 벌어진 정상화 관련 이슈들. 그래픽=이우림 기자
▲ 지난해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MBC에서 벌어진 정상화 관련 이슈들. 그래픽=이우림 기자

‘실패할 자유’ 언제까지 유효?

최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구성원들에게 강조한 메시지는 “실패할 자유”였다. 무너진 콘텐츠 경쟁력 회복을 목표로 수백억 적자폭에도 불구하고 적자 편성을 감행했지만 드라마, 예능은 물론 보도 부문에서도 반등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예능의 경우 ‘무한도전’ 종영 이후 ‘전지적 참견 시점’, ‘나 혼자 산다’ 외에 새롭게 반향을 이끈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 자체제작작품들이 낮은 시청률 속에 종영한 가운데, 최근 ‘내 뒤에 테리우스’, ‘나쁜 형사’ 등이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한방은 없었다”는 반응이다.

그나마 시사교양 부문에서는 과거 MBC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최 사장 취임 초기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이슈를 이끈 데 이어 ‘PD수첩’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MBC스페셜’의 경우 최근 ‘내 심장을 할퀸(QUEEN)’과 같은 기획이 시청자 요구를 재빠르게 수용했다는 면에서 긍정 평가를 받았다. 지난 1월 방영한 MBC 스페셜 ‘36700년의 눈물’은 최근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3%대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MBC 보도국 한 구성원은 “MBC 뉴스가 남들이 다 ‘톱’으로 뽑는 것 말고 굵직한 이슈들로 사회적 어젠다를 주도하는 내실을 회복하길 바랐는데, 급조한 듯한 코너나 앵커 교체 등 ‘외모 가꾸기’에 치중했던 게 아닌가”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뉴스 개편을 전후로 이어진 조직 내 잡음도 불거졌다. 내년 초 ‘와이드뉴스’ 개편안은 평기자들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된다는 반발을 샀고, 내부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기존 1월에서 3월로 개편 시점이 조정됐다.

다만 뉴스 개선 방향을 둘러싼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 자체가 건강한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MBC 보도국의 한 기자는 “일각에서는 ‘과잉 민주주의’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 표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예전 같으면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란 측면에서는 과거보다 나아진 것 아니냐”고 전했다. 최근 ‘비리 유치원’ 연속보도 같은 특종은 MBC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예로 꼽힌다. “예전처럼 우리가 뭔가를 해나가는 느낌, 조직 내부에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힘을 오랜만에 느꼈다”(이해인 기자, 기자협회보 인터뷰)는 취재 후기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청산과 재건’ 방향키는

최승호 경영진이 방향키를 확실히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의 배경으로 ‘더딘 청산’이 지목된다. 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는 “최 사장은 10년 동안 짓밟힌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회복해 공영방송 MBC를 재건하는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는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속도와 폭에서 만족스럽다고 보기 어렵다”며 “적폐청산, 미래전략, 조직 운영과 인사 정책 모두 만족할 만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평가했다.

과거 청산 기구로 출범한 노사 공동 정상화위원회(정상화위)는 활동 기간 대비 성과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출범 이래 정상화위가 공식 조사 결과 및 후속 조치를 밝힌 사안은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보도 △2016년 8월 ‘우병우 청부’ 의혹 보도 △김세의 전 기자 인터뷰 조작 논란 △2012년 10월 ‘신경민 막말 파문’ 허위 보도 정황 등이다. 주요 과제로 언급됐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세월호 참사 당시 문제적 보도 등에 대한 조사는 발표된 바 없다. 정상화위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를 따져봐야 하는 데다 조사 대상자들이 출석하지 않는 등 협조가 잘 안 되는 문제가 가장 크다. 사안별로 자료를 찾고 관련자 인터뷰 등 방대한 조사를 해야 하는데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없어 적은 인력이 이를 모두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한계를 호소했다.

부당노동행위 및 채용비위 등과 관련한 문제는 일부 MBC 감사 결과를 통해 알려졌으나, 후속 조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반발과 논란만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다. 전임 경영진 시절 아나운서, 카메라기자, 취재기자 등 각 직군에서 ‘블랙리스트’가 작성 및 시행된 정황이 드러났지만 법적 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등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2014년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채용된 경력기자들의 경우 박근혜 정부 여권 정치인 추천서를 받은 기자 채용 과정의 경위가 언론보도로 알려진 지 4개월이 지났지만 감사 보고서 결과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해직 언론인 출신인 최승호 사장으로서는 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이미 정상화위 및 감사 결과에 따라 책임이 적발된 10여 명이 해고된 가운데 추가적인 해고 및 채용 취소를 단행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해석이다. 

과거 잘못된 인사정책과 중첩되는 비정규직 문제도 난관이다. 지난 2016년과 2017년 입사한 전직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부당해고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스태프나 작가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묻혀있던 비정규직 이슈들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MBC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진보적인 사장이라고 기대했는데 알맹이를 안 바꾸고 변죽만 울리는 느낌”이라며 앞으로 적극적인 고용개선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언론계에서는 최 사장 취임 1년을 놓고 당장 MBC 재건 평가를 하기에는 무리라는 반응도 있다. MBC가 대대적 조직 쇄신을 예고한 가운데 내년 초 구조조정 결과가 최승호 체제의 향방을 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기자는 “9년 반 동안 MBC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1년 안에 수습이 다 될 수 있을까”라고 되물으며 “이번 임기는 수습만 하다 끝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MBC의 한 PD는 “경영진이 나이브하게 생각하고 들어온 점도 있는 것 같다”며 “(위기 극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김태호 PD가 돌아와 좋은 예능을 만들더라도 지상파가 놓인 시스템 문제 등으로 많이 힘들다고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선의를 갖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내년에 활로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MBC본부 관계자는 “지난 정권 하에서 적폐 경영진이 조장하고 방치했던 MBC 내부의 적폐와 외부적 환경 악화는 우리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뒤 “단기적 경영 실적 회복보다는 한국 사회에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공영방송의 앞으로 10년 초석을 다진다는 자세를 견지하기를 기대한다. 적폐 청산과 미래를 위한 투자 모두 과감하게 결단하는 리더십을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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