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KT 간부들이 지역 케이블 설치‧보수를 맡는 KT 하청업체에 사장 등 고위직에 재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원청 KT가 하청업체의 불법경영에 눈을 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KT상용직지부(KT상용직노조)가 조사해 확보한 통계를 보면, 강원과 대구경북 지역에서 KT 케이블 설치·보수를 맡는 대다수 하청업체에서 KT 원청에 근무하던 직원과 간부가 회장‧사장 등으로 재직 중이다.

강원 지역 KT 하청업체 10곳 가운데 8곳에선 본사와 국사, 지사 내 전직 팀장부터 지사장에 이르는 인사 15명이 하청업체 사장‧부사장‧상무 등 고위 직책을 맡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13곳 가운데 10곳에서 본사‧국사‧지사에서 과장급 이상 직책으로 근무하던 15명이 하청업체 회장 등 부장급 이상 간부로 가 있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가 확보한 KT 퇴사자의 하청업체 고위간부 재직 현황. 음영처리=미디어오늘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가 확보한 KT 퇴사자의 하청업체 고위간부 재직 현황. 음영처리=미디어오늘

노조는 전직 KT 퇴사자가 협력업체 간부로 가는 현상이 전국에 퍼져 있다고 보고 있다. 전국 144개 업체가 KT와 원하청 계약을 맺고 있다.

이들 하청업체는 원청인 KT의 케이블 설치·수리 업무를 위탁 수행한다. 업체들은 통신케이블 설치수리 노동자들을 일용직 형태로 고용한다. 노동자들은 전신주 위나 맨홀 밑에서 하루 평균 10시간 일한다.

하청 임원들이 원청 KT 전직 간부들로 채워지고 원청의 관리와 지시 아래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KT상용직노조는 이들 하청업체 경영진이 KT 원청 측과 맺는 긴밀한 인적 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불법행위를 지속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원청은 변동 없이 계약을 갱신한다고 했다. 노조는 “전직 KT 간부들은 KT에서 고액연봉을 받다 하청업체에 자리를 마련해서 퇴직하는데, 하청업체의 바지사장이나 부사장 직함을 달고 다시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들은 노조를 탄압하고 교섭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한다”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하청업체들은 KT가 이들에게 지불한 발주대금에서 노동자들 몫을 가로채왔다. 원청은 노무비 명목으로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시중노임단가에 따라 하루 28만~32만원가량을 책정해 지급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실제로 받는 일당은 평균 16만원에 그친다. 노조는 또 하청업체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퇴직금과 4대보험료를 가로챘으며 △법정수당은 지급하지 않고 △안전모 등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산업안전기본법 등을 위반해왔다고 주장했다.

KT는 해마다 전국 KT 하청업체와 계약을 갱신하는데, 이 명단을 대외비로 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하청업체가 불법을 저질러도 이 명단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지사 앞에서 ‘KT하청업체 노동착취-불법행위 규탄 및 KT관리감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지사 앞에서 ‘KT하청업체 노동착취-불법행위 규탄 및 KT관리감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KT상용직노조 대구경북지회는 지난 10월22일부터, 강원지회는 지난달 2일부터 하청업체의 불법행위를 규탄하며 무기한 파업을 벌여왔다. 이들은 원청인 KT가 하청업체에 불법행위를 중단하도록 관리‧감독하라고도 촉구했다. 그러나 KT는 “쟁의조정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노조와 면담을 거부해왔다. 강원지회와 대구경북지회는 지역 하청업체들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고 체불임금을 진정했다.

KT 측은 “퇴직자의 재직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으며, 하청업체에 재직하게 된 경위도 알 수 없다. 이들은 전직 KT 임원이었을 뿐, 퇴사자들이라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하청업체 불법행위를 관리‧감독하라는 요구에는 “밝힐 입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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