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은 핵발전을 하는 모든 나라의 골치덩어리다. 핵발전소를 처음 개발했던 1950년대, 당시 핵공학자들은 핵폐기물 처분 방안이 조만간 개발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낙관주의는 여지없이 깨졌다. 이후 6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고준위핵폐기장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유일하게 핀란드가 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있을 뿐이다. 나라별로 혼란도 크다. 스웨덴에선 핵폐기물 보관용기가 부식될 우려가 제기돼 환경법원이 허가신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미국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유카 산에서 수십년 동안 연구하고 있지만, 당장 처분장을 건설하기보다는 중간 저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생태계에서 10만년 이상 격리시켜야 하는 고준위핵폐기장의 기술조건을 맞추기 그만큼 어렵다.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도 중요하다. 수십년 동안 핵발전소 인근에 사는 지역주민들은 핵폐기물을 하루 빨리 다른 지역으로 옮길 것으로 요구한다. 왜 우리 지역에만 희생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인구 밀도가 낮은 농어촌 지역이다. 점차 핵발전소 수명이 끝나가는 현실에서 이 위험을 계속 떠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대도시 시민들은 고준위핵폐기물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이런 이야기를 지역 이기주의 정도로 치부한다. 대도시 전력공급을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는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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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보니 핵폐기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우리 사회 주요 갈등 중 하나였다.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 널리 알려진 핵폐기장 반대운동 외에도 해안선을 따라 웬만한 지역은 모두 핵폐기장 후보지로 거론됐다. 한국탈핵운동 역사는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역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핵폐기장을 둘러싼 갈등은 골이 깊다.

그럼에도 우리 언론이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다루는 프레임은 여전히 “시급성”이다. 최근 국정감사 등에서 고준위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들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임시저장고 포화 상태에 대비가 부족하다거나,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시설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식의 기사 제목이 나붙는다. 2021년경부터 포화가 예상되는 각 핵발전소 상황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다. 핵발전소 내에 위치한 임시저장고가 가득차면, 핵발전소는 가동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전적으로 핵발전 사업자인 한수원 시각이다. 서둘러 가면 빨리 갈 것 같지만, 근본 문제를 회피해서 오히려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19년 동안 9차례 갈등을 겪은 끝에 경주로 확정된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지질문제로 부지선정 이후 완공에 10년이나 걸렸고, 완공된 이후 지금도 해수 유입과 안전성 문제를 겪고 있다. 2005년 당시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지질문제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는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했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는 “조속한 고준위 저장시설 건설” 주문이 들린다. 1989년 처음 핵폐기장 문제가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핵산업계는 언제나 핵폐기물 문제가 시급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급하다는 말만 갖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30여년의 교훈이다. 급하게 추진하다 활성단층을 만나 좌절됐던 굴업도 교훈이나 대규모 시위로 수차례 관계장관이 경질됐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해야 하는 10만년의 세월 앞에 공론화기간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급하다고 독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쟁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급하다고 타박만해서 잘되는 일은 없다. 고준위핵폐기물을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지 해법을 제시하는 언론의 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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