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박근혜씨와 정책 홍보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한 독립(외주)제작사에 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키는 등 석연찮은 계약을 맺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작사 측에선 EBS의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EBS는 2015~2016년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주도한 ‘희망나눔 캠페인(드림인)’이란 정부정책 홍보영상 36편을 만들었다. 해당 영상에는 주제와 상관없이 청와대 지시로 당시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을 넣기도 했다.

[관련기사 : EBS, 청와대 지시받아 박근혜 홍보영상 찍었나]

영상제작은 EBS 내부 인력이 아닌 제작사에 맡겼다. 해당 제작사 대표 A씨는 10여년전부터 EBS 파견직 조연출, 프리랜서PD, 독립(외주)제작사 등 EBS와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해왔다. 그는 “EBS 내부에선 다 이 일을 맡기 싫어해 플랫폼을 제공하고 계약만 체결했다”며 “실제 업무는 홍보수석실 행정관과 내가 직접 소통하며 진행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지시받으며 일하기 싫으니 EBS가 이를 제작사에 떠넘겼다는 설명이다.

▲ 한국교육방송공사 로고
▲ 한국교육방송공사 로고

EBS가 외주를 주려면 입찰 공고를 내 업체를 선정하고 업체와 계약서를 쓴 뒤 선금·중도금·완금 등 제작비를 지급해야 하고, 방송사 내부 PD가 제작하려면 EBS PD가 연출을 맡고 작가나 스태프 등을 프리랜서로 쓰면서 제작해야 한다. 청와대 주도로 진행한 ‘희망나눔 드림인’의 경우 실제론 모든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겨 진행했지만 행정절차는 내부 제작처럼 진행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EBS PD가 연출을 맡은 것처럼 서류를 작성했으니 EBS는 제작사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 즉 EBS는 별도 계약서도 없이 제작사에 일을 시켰고, 제작비 선금을 주지 않았으니 제작사가 금전부담을 떠안은 채 일을 했다는 주장이다. 제작비를 줄 때도 서류 조작이 발생했다. 서류상으론 연출료·작가료·촬영료 등을 EBS가 외부 프리랜서에게 줘야 하므로 실제 제작사 측에는 줄 명분이 없었다. EBS는 제작사 대표의 지인들을 PD·작가·카메라감독 등 프리랜서처럼 이름을 올려 돈을 받게 했다.

▲ 제작사 대표 A씨의 직원 뿐 아니라 친구 등 지인의 이름으로 제작비를 청구하는 내용의 메일
▲ 제작사 대표 A씨의 직원 뿐 아니라 친구 등 지인의 이름으로 제작비를 청구하는 내용의 메일

수상한 계약관계는 EBS와 제작사 간에만 있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영상 편집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산은 정부부처에서 부담했다. A씨와 당시 홍보수석실 행정관 B씨의 2016년 11월 통화 내용을 보면 2015년에는 EBS가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금융위원회 등 5개 부처 예산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2015년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약 750만원이었다. 이는 정부 부처예산 500만원과 EBS 예산 250만원으로 구성했다. 정부 5개 부처는 입찰이 필요 없는 수의계약 한도 2000만원으로 EBS와 계약을 맺었다.

A씨는 “부처에서 예산을 댔지만 내용은 청와대에서 정했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일부 부처에서 우려했다”며 “자신들 정책 내용을 넣어달라고 부탁한 부처도 있었다”고 말했다. 2015년 11월 복권위원회 측에서 제작사에 보낸 메일을 보면 제작일정 등을 공유해달라며 “복권관련 내용은 꼭 들어가야한다는 점 알려드린다”고 부탁했다. 문제가 복잡해지자 2016년에는 제작비를 조금 올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일괄해 EBS와 계약을 맺었다.

▲ 2015년 11월26일 당시 복권사업수탁자인 나눔로또 관계자가 제작사에게 '복권 관련 내용을 영상에 꼭 넣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 2015년 11월26일 당시 복권사업수탁자인 나눔로또 관계자가 제작사에게 '복권 관련 내용을 영상에 꼭 넣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KTV와 같은 국정홍보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EBS를 이용한 이유는 홍보의 효율성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행정관 B씨는 청와대가 왜 EBS에 해당 업무를 맡겼는지 “모른다”면서도 “추정컨대 단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 역시 “편당 1200만원을 요청했는데 청와대에서 전체 편수는 정해놨으니 (정부에선) 편당 500만원 밖에 못 주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부담은 고스란히 영상을 만든 제작사로 갔다. A씨가 EBS와 ‘드림인’ 말고 다른 업무도 하는 상황이었기에 청와대와 진행하는 이 일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A씨는 빚을 내 제작사 직원들 인건비 등을 감당하며 영상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드림인’ 영상을 2년 간 열심히 만들었지만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EBS와 수학교육 콘텐츠 업무를 함께 하다 EBS의 갑질로 제작사가 망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지난 1월 이를 청와대에 민원으로 넣자 지난 3월 감사원이 조사했다. 감사원 답변을 보면 EBS는 “90초 분량의 작은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여건상 절차 부담을 줄이려고 구두계약을 체결했다”며 “프로그램 1편 완성에 1년 이상 장기간 소요할 경우 선금을 지급하지만 ‘희망나눔 캠페인’은 한 달 단위로 (제작 이후에) 제작비를 정산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EBS는 “연출료를 지급한 경로에 문제점이 확인돼 향후엔 구두계약보단 서면계약을 체결하도록 계약서 관리방식을 개선하고 제작용역 제공자와 세금계산서 발행인이 일치해야 제작용역비가 지급되도록 지급절차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감사원에 답했다. 

A씨 주장을 보면 EBS에선 편성운영부·대외협력부·광고문화사업부·플랫폼운영부 등이 광범위하게 박근혜 청와대 홍보영상에 관여했다. 미디어오늘은 이와 관련해 EBS에 지난달 20일과 지난 4일 질문을 보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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