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교사들에게는 가장 마음 시린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한참 추워지는 때가 돌아오면 교사들 마음은 더 추워진다. 어린이집에서는 원장과 교사 간 일대일 면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통 어린이집은 3월이면 새로 반을 구성하고 새 학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반 구성을 위해 11월 중후반이면 면담이 시작된다. 이 면담은 교사에게 어떤 반을 원하는 지 묻기 전에 우선 계속 근무를 하는 지 여부를 묻는다. 원장면담은 자연스럽게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 다르게 표현하면 원장이 내보내고 싶은 교사를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 119’ 오픈 채팅방이 생긴 지 이제 1년이 갓 지났다. 직장갑질 119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갑질에 대해 상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온라인 공간이다. 직장갑질 119가 운영되고 난 후 접수된 갑질 사례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종이 바로 어린이집 교사직종이다. 특히 11월부터 2월말까지는 그 접수사례도 많다. 노동조합도 똑같다. 원장과 면담이 시작될 즈음부터 새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상담이 가장 많다.

여러 통로를 통해 들어온 상담사례를 보면 원장들이 얼마나 교사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최근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원장이 따귀를 때리고 나가라고 한 사건이다. 그 외에도 ‘살을 20kg빼고 오지 않으면 재계약은 없다’, 주임이 원장 편이 아닌 교사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주임으로서 자질이 없으니 나가라’, 매일 야근을 시켜 초과근무 수당을 요구하자 ‘어디 감히 수당을 요구하나! 당장 나가’, 근무시간을 8시간이 아닌 7시간 55분으로 명시해서 휴게시간을 1시간에서 30분으로 줄이려는 근로계약서를 내밀며 ‘사인 못하면 재계약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교사를 협박하고 고립하는 수법은 비슷하다. 동료교사들에게 말 걸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CCTV를 통해 누구와 말하는지 감시하고, 말시키는 교사들을 다그치며 교사 한 명을 고립시킨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교사라며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이유로 혹은 육아휴직이 끝나 복귀하겠다는 이유로 ‘뻔뻔하다’며 ‘나가라’고 하기도 한다. 육아휴직기간이 끝나면 받게 되는 휴직급여를 원장에게 페이백하면 복귀시켜주겠다고 조건을 거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어느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여러 곳에서 유사하게 중복해서 나타난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모인 장소에서 이런 사례들을 이야기하면 ‘우리 어린이집 이야기인줄 알았다’, ‘어디든 원장이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할 만큼 일반적이다.

이런 사례들을 상담하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한 어린이집에서 한, 두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나? 이유를 찾다보면 대부분은 국공립어린이집이면서, 또 해당 교사가 장기근속자라는 공통점이 발견되고는 한다. 4만 여개 어린이집 중 80%정도를 차지하는 민간, 가정 어린이집에는 호봉이 없다.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전국 3천개정도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에는 ‘호봉’이라는 것이 있어 경력에 따라 급여가 조금씩 오른다. 국공립어린이집은 인건비의 상당부분이 국가에서 지원됨에도 불구하고 5년차 정도 된 교사를 장기근속자로 분류한다. 원장은 이런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격모독, 감시, 고립, 욕설, 손찌검까지 서슴없이 자행한다. 마치 한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듯 전국 각 지 어린이집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집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을 한다.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경험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이해하게 된다. 0세에서 만 5세 영유아기 아이들을 포괄하는 어린이집에서 전체 연령을 맡아본 교사들은 자긍심이 생긴다. 아이의 성장에 대해 많은 경험과 이해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은 그자체가 교사에게는 교과서다. 특성이 강한 아이들을 만나는 것 또한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경험이고 아이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한마디로 다양한 연령,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수록 교사는 조금 더 괜찮은 교사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괜찮은 교사로 성장기도 전에, 오히려 괜찮은 교사로 성장할수록 해고 1순위가 되는 곳이 바로 어린이집 현장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단박에 괜찮은 교사가 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더 괜찮은 교사로 성장하게 된다. 괜찮은 교사가 많을수록 보육의 질도 높아진다. 어린이집교사들에게는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며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장기근속자라고 잘라내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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