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단식 결단, 또 무슨 일 터지나? 정가 ‘술렁’”

한 인터넷 매체가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무언가를 결심하면 큰 사건이 벌어져 묻힌다는 일명 ‘손학규 징크스’를 소재로 한 보도다.

손학규 징크스는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 유명하다. 손학규 징크스는 2006년에 시작됐다. 그해 10월9일 손 대표는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1차 핵시험 뉴스가 터지면서 묻혀버렸다. 2007년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는 논란의 한미 FTA가 체결됐다. 2014년 정계은퇴 후 전남 강진에 칩거하고 2년 뒤 2016년 10월 칩거생활을 풀자 그날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해에도 손 대표가 국민의당에 입당하는 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수감돼 그의 결단은 빛을 보지 못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5월 손 대표가 서울 송파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히자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됐고, 하루 뒤에 출마 의사를 번복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자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소식이 들어왔다.

우연이 거듭되면서 손학규 징크스는 어떤 대형 이슈가 터지기 직전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손학규 대표가 큰 일을 도모하거나 결단을 내리는 행동을 할 때 꼭 대형 이슈가 터졌다며 ‘손학규 징크스’를 소환해 희화화하는 보도가 나온다.

손 대표가 지난 6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자 다시 또 손학규 징크스를 언급하고 있다. 언론이 내놓은 보도는 손학규 징크스를 언급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을 전망하는 정치인들의 농담성 발언을 소개하는 식으로 흐른다.

박종진 전 앵커는 팟캐스트에서 “손 대표가 단식하는 것을 보니 김정은이 다음 주에 올 것 같다”고 말하자 기사화가 됐다. jtbc 한 기자는 자사 뉴스 코너에서 “손 대표가 중요한 결심을 할 때마다 더 큰 일이 생겨 묻힌다는 의미인데 그래서 온라인상 반응을 보시면 손학규 대표가 단식한다는데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발표하는 것 아니냐,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하자 앵커는 “손학규 대표 본인이 그런 징크스를 가지고 소위 셀프디스 영상을 만들어서 홍보하기도 하지 않았나. 게다가 지금 또 김정은 답방이 임박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에 또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군요”라고 말한다.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손학규 징크스와 연결시킨 건 민주평화당 박지원 전 대표의 역할이 컸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에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손학규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으니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밝히면서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위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위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박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련의 손학규 징크스를 언급하고 “손학규는 죽고 김정은은 답방해야 대한민국이 산다”며 “(손 대표는) 김정은 위원장 방남을 적극 환영하고 그래도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단식을 계속한다(고 하더라)”고 썼다. 박 의원은 “그의 단식 소식을 듣고 이번에 틀림없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 방남이 이뤄지겠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손학규 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익환 바른미래당 부대변인이 9일 논평을 통해 “박 의원이 단식 중인 손학규 대표를 언급하며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붓다 못해 해괴한 논리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민의를 받들어 거대양당의 기득권 정치를 개혁하고자 곡기까지 끊고 계신분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정작 손학규 징크스의 당사자인 손학규 대표는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나간 논평이며 박지원 전 대표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10일 오후 MBC와 인터뷰에서 “뭐 (박지원 전 대표가) 저를 나쁘게 봐서 그런 게 아니라 김 위원장 방남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건 손학규도 원하는 바가 아니냐 그런 뜻”이라며 “저는 내가 죽더라도 내가 나온 걸을 덮기 위해서 김정은이 오면 손학규는 죽지만 한반도 평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얘기했고, 나에게 나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 답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 정도이고, 손학규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선거 제도 협상에) 출구를 찾게끔 하는 발언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사자인 손 대표가 자신의 징크스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박 전 대표 발언에도 문제 없다고 했지만 손학규 징크스를 언급하는 뉴스 보도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따옴표에 갇혀 정치인의 막말을 중계하거나 대결 구도로 몰아넣어 중계하는 것이 정치뉴스의 폐해라고 지적한다.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가 될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선거제도를 바꾸려는 정치인의 결단과 연결시켜 희화화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손학규 대표는 10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회견에서 “촛불의 힘으로 정권을 잡은 더불어민주당은 촛불혁명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짬짜미 예산을 통과시키며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했다”며 “연동형 비례제를 쟁취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민생과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10일 김정은 위원장 연내 답방 가능성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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