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6일, 저들에게 잡혀간 지 1641일이 되는 날이다. 4년 6개월인 2014년 5~6월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만민공동회 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청와대 인근 시위 3건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으나, 삼성 관련 사건과 일반교통방해 추가 기소 건에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014년 6월 10일, 저들은 청와대 주변의 60여 곳 집회를 모두 금지시키고,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봉쇄했다. 막힌 곳마다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그마저도 금지시키려는 자들은 더욱 거친 폭력으로 답했다. 진실을 외치던 절규들이 진압되고 밤새 내리던 빗소리만 남았을 때,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던 시민들이 실려 간 곳은 경찰서 유치장이었다.

▲ 2014년 5월18일 만민공동회 후 광화문 앞으로 이동하는 시민을 경찰이 막아서자 시민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2014년 5월18일 만민공동회 후 광화문 앞으로 이동하는 시민을 경찰이 막아서자 시민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2014년 6월 13일, 저들은 청와대 시위의 주동자를 색출하여 구속시켰다고 발표했다. 폼 잡고 영장심사에 등장한 공안 검찰은 대통령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한다. “박00은 물러가라”고 외쳤냐고? 아니오! 그런 사람 모른다. 물러나야 할 사람은 박땡땡이 아니고, 박! 근! 혜!

2014년 7월 17일, 재판부에 의해 보석으로 석방돼 서울구치소 정문을 걸어서 나왔다.

2014년 9월 18일, “박근혜 7시간”이 본격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할 때, 포털 업체까지 참여한 대책회의가 열리고, 검찰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을 선언했다.

2014년 10월 1일,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한 날,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름도 모르는 수천 명의 정보와 함께 그들이 주고받은 글과 사진, 대화 내용이 공안기관에 통째로 압수됐다는 것을 폭로했다. 수백만의 사람들은 사이버 망명으로 저항했고, 사이버 사찰을 규탄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2014년 10월 16일, 검찰은 피고인이 근거 없이 사이버 검열 파문을 일으켜 국가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보석 취소를 재촉하는 입장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일부 종편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쓰며 거짓말이 탄로 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더 많은 언론과 정당,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의 무리한 보복조치와 재갈 물리기 시도를 비판했다. 이후 압수수색은 최소한의 합법 절차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집행임이 입증되고, 결국 재판부에 의해 증거자료에서 삭제됐다.

▲ 만민공동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2014년 5월18일 광화문 누각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만민공동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2014년 5월18일 광화문 누각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2016년 3월 17일, 저들의 집회 금지로 피해 당한 당사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6월 저들이 자행한 집회금지 통고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저들이 자행한 집회금지가 조작이자 불법이라 규정한 것이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피고인이 청구한 위헌제청 심판에 집시법 11조가 규정한 총리 공관 앞 집회 금지가 위헌이고, 2019년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4년 만에 재개된 공판에서 검찰은 민주노총 총파업대회 등을 추가 기소하며, 위헌 판결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형량을 늘려 징역 2년6월을 구형했다.

2018년 11월 20일, 오늘의 재판 일정 기사에는 ‘청와대 행진 시도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15차 공판’이라고 제목이 달렸다. 선고 예정일 아침에 변론 재개를 통보해 갑작스레 다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단 하나의 증거자료를 추가로 제시하였고, 심리는 1분 만에 끝났다. 피고인이 현재 진행 중인 희망버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적이라는 취지의 증거자료가 채택됐다. 재판정에 나온 기자들은 대부분 위헌 판결에도 왜 검찰이 구형량을 늘렸는지 물었다.

2018년 11월 27일, 나는 집시법 제정이래 최초로 국회 앞 1호 집회를 열었다. 나는 집시법 11조의 위헌제청 청구인으로 집시법 11조 폐지 선언대회 사회를 봤고, 집회 참가자들은 더 크고 강한 힘을 모아 집회 시위의 자유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12월 6일, 선고만 네 차례 연기되고, 재판부가 몇 번 바뀐 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4년 6개월이 걸린 이 재판의 1심은 청와대 앞 시위 3건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요약하기도 힘든 여정이었다. 한겨레 김민경 기자는 저들과 피고인이 주고받은 4년여의 이야기를 “세월호 집회의 나비효과 – 총리공관 집회 금지 헌법불합치”라고 표현했다. 나비효과는 사이버 사찰에 대한 분노로 모였고, 다시 집시법 11조 폐지 선언으로,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돼 전해질 것이다.

어느 날, 우리의 삶과 양심, 가치관까지도 제압하고자 했던 저들을 제압하고, 비로소 우리 힘으로 피고인 딱지를 떼어버린 날. 우리의 몸짓은 4년 6개월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무척 오랜 시간 동안, 여전히 나비의 날갯짓이 돼 이렇게 저렇게 흘러 다닐 것이다. 이 여정을 제대로 표현할 능력은 없지만, 한 차례 단락을 그을 만한 자신감은 생겼다. 

연결해야 한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더 크고 강한 울림으로 우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피고인들은 이미 승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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