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처음 겪은 문화적 충격은 수십 명의 기자들이 자신의 무릎에 노트북을 올리고서 똑같은 말을 받아 적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그 일의 불가피성은 차치하더라도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순간 “잠깐만요!”라고 외치고서, “우리 중에 두 사람만 받아적어서 공유하면 어때요”라고 제안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나대진 못했다. 한국에서의 사회화의 영향이랄까.

2년도 더 전에 겪은 정치부에서의 첫 날이 기억난 계기는 지난 2일 방송된 한국방송(KBS)의 ‘저널리즘토크쇼J’를 시청하면서다. 언론의 ‘따옴표 저널리즘’을 집중 조명한 이 프로그램은 막말 정치인과 언론이 공생관계라며 정치 저널리즘의 문제를 적절하게 지적했지만, 다소 오해의 요소도 있다. 언론이 정치인의 발언을 보도하는 행태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은 중요한 정치행위다. 권한이 있는 정치인의 말은 정책이 되어 법이 바뀌기도 하고,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논박은 이해집단의 충돌이며 그 자체로 사회의 구조를 드러낸다. 따라서 언론이 어떤 말을 보도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최근 이삼일에 100여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지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의 경우엔 “겉멋 든 강남좌파”, “운동권 좌파”, “박정희는 천재적 인물” 등 튀는 발언들과 함께 보도된다. 이 의원의 행보는 새롭진 않다. 이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전 대표가 걸어갔던 길이다. 필자는 정치부에 머문 일년간 홍 전 대표를 담당하며 늘상 괴로웠다. 친박 마케팅을 하다가 돌연 친박 의원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고 민주당을 향해선 덮어놓고 “얼치기 좌파”라 매도하며 친문을 향해선 “문슬람”이란 증오의 말도 서슴지 않는다. 막말을 무시하자니 기사를 쓸 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의 입에서 정책은 나오지 않고, 여의도 밖의 특정 이해집단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지도부의 주요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튀는 말로 힘겨루기를 하는 그들만의 경기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왼쪽),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연합뉴스
▲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왼쪽),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연합뉴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이런 말만 하는가. 그건 아니다. 국회에는 18개의 상임위원회가 있다. 이 곳에서는 수시로 회의가 열려 법률안을 심사한다. 20대 국회에서는 2년 8개월 동안 17169개의 법안이 발의됐고, 지난 11월 30일에만 자유한국당의 사립유치원 법안인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비롯해 총 28개의 법안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450조원에 달하는 국가 재정을 심의한다. 최근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부모 가정의 보호시설 예산을 삭감하자고 주장도 이 예결특위에서 나왔다. 국회의원도 법을 만들기 전에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사전에 토론회 등을 활발하게 연다. 고용보험법을 바꾸기 위해선 택배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공청회를 여는 식이다. 이런 행사가 국회에선 하루에 십여 건이 열린다. 이처럼 국회의 한켠에선 취재거리가 널려있는데도 언론은 당 지도부의 회의와 국회 복도에서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힘겨루기에만 주목한다. 그것이 정치저널리즘의 진짜 문제다.

물론 새로운 시도가 있긴 했다. 머니투데이는 2014년 5월 정치전문 매체 '더300'을 창간해 ‘상임위 저널리즘’이란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고, 이후 여러 경제매체들이 상임위에 기자들을 추가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지속되지 못했고 선거 때만 되면 인물 중심의 판세 보도로 회귀했다. 더300의 주요 정책 콘텐츠인 ‘새법안’, ‘상임위 동향’, ‘속기록’ 등은 최근 몇 달째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조회수가 덜 나오는 정책보도를 지속할 만한 동력이 언론 내부엔 부족한 셈이다. 하루아침에 정치저널리즘을 바꿀 수 없다면 작은 실천이라도 제안하고 싶다. 막말은 무시하고 속기록은 공유하며 상임위를 취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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