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핵심 실무자로 지난 10월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왜곡·조작한 정황이 적혀 있다.

그 중 하나가 2016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행사를 비판하자 법원행정처가 법률신문에 대필 기사를 게재한 의혹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양승태 대법원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법조인이 자주 보는 법률신문에 대필 기사까지 계획·실행한 것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 공소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피고인(임종헌)은 2016년 3월18일경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3인을 지명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는 발언을 하자 헌법재판소 위상과 권위를 깎아내리고 헌법재판소장 도덕성 등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기사를 대신 작성해 법률신문 기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박 소장 발언을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도록 계획했다.”

실제 법률신문은 2016년 3월25일 “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에 법조계 ‘술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현재 법률신문을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는 박한철 전 소장이 2016년 3월18일 한 토론회에서 대법원을 겨냥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3명을 지명하는 것은 헌법재판관의 민주적 정당성을 희석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법조계 평가를 담았다. 

▲ 대필 의혹을 사고 있는 기사는 법률신문 2016년 3월25일자 “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에 법조계 ‘술렁’”이라는 제목의 보도다. 사진=법률신문 기사 화면 캡처
▲ 대필 의혹을 사고 있는 기사는 법률신문 2016년 3월25일자 “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에 법조계 ‘술렁’”이라는 제목의 보도다. 사진=법률신문 기사 화면 캡처
법률신문 기사에는 “두 기관(헌재와 대법원)의 긴장 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다는 헌재가 소명으로 내건 사회 통합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익명의 대형로펌 변호사’ 지적이 담겼다.

또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민생경제가 어려운 시점인데도 헌재는 개헌을 통한 권한 확대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헌법기관간의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어야 했다”는 ‘익명의 서초동 변호사’ 멘트도 실렸다. 

검찰은 공소장에 “기사에 인용된 변호사 등의 인터뷰 내용은 창작된 허위 사실로서, 작성자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및 타인의 명예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기사 근거를 뒷받침하려고 인터뷰를 조작했다고 봤다.

검찰이 밝힌 구체적 전말은 다음과 같다. 임 전 차장은 2016년 3월20일 법원행정처 차장실에서 당시 사법정책실 심의관 문성호 판사(현 서울남부지법 판사)에게 ‘모 언론인이 3월18일에 있었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헌법재판소장 발언이 보도된 것을 보고 화를 내면서 기사를 써야겠다고 한다, 토론회 내용에 대해 문 판사님이 쓴 보고서를 가지고 헌법재판소장 발언을 비난하는 취지의 기사 초안을 한번 작성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문 판사는 “기사 자료를 주는 것은 괜찮을 것 같은데 기사 초안을 작성해주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화를 내며 큰소리로 “일단 써 보세요”라고 그에게 재차 지시했다.

결국 문 판사는 2016년 3월22일 “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에 법조계 ‘술렁’”이라는 제목의 기사 초안을 작성해 윗선에 보고했다. 임 전 차장은 문 판사가 작성한 기사를 법률신문 측 관계자에게 송부했다. 이를 받은 법률신문 기자는 2016년 3월24일 기사 초안의 순서와 표현 일부만 고치고 다소 축약한 형태로 제목과 기사의 문구, 내용, 발언 인용 등을 그대로 옮겨 ‘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에 법조계 술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법률신문에 게재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이 기사는 법률신문 기자가 사실에 입각해 작성한 기사가 아니라 피고인(임종헌) 지시에 따라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할 목적으로 대법원의 입장을 대변해 작성한 것이었다. 기사에서 인용된 ‘대형로펌의 한 대표변호사’, ‘서초동의 한 변호사’의 인터뷰 내용은 창작된 허위 사실”이라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이 문 판사에게 허위 내용이 기재된 기사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은 직권 남용이자 “작성자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및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 부당한 지시”라는 것이 검찰 결론이다. 한겨레21은 기사를 작성한 문 판사에 대해 “공소장에 등장하는 문 판사는 임 전 차장이 평소 기자들 앞에서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소신과 주관이 뚜렷해서 내가 아끼는 후배’라고 치켜세웠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법률신문 측은 대필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9월 미디어오늘에 “일부 언론의 기사 대필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본보는 기사 보도를 대가로 법원으로부터 어떠한 특혜를 받은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이 같은 검찰의 공소 사실과 관련해 정성윤 법률신문 편집국장에게 전화와 문자를 통해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문제의 기사(“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에 법조계 ‘술렁’”)는 여전히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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