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배우 고 장자연씨가 남긴 문건에 나온 내용과 비슷한 시기 장씨가 사회 유력인사들과 만났다는 증언이 또 나왔다.

지난 3일 MBC 보도에 따르면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씨가 숨지기 전 2008년 가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66)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박문덕(68) 하이트진로 회장, 권재진(65)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술자리를 한 것으로 확인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검·경 수사기록과 관련자들 증언에 따르면 장씨와 방용훈 사장이 처음 만난 건 2007년 10월이다. 방 사장은 이미 지난 5월 미디어오늘에 장씨와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것은 맞다면서도 “당시 모임은 주한미대사관 공사, CNN 한국지사장 등이 참석한 매우 정중한 저녁식사 자리로서 ‘룸살롱 접대’, ‘잠자리 요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방 사장은 당시에도 ‘식사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 장씨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고, 소개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검 조사단에선 방 사장이 장자연과 여러 차례 만나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 지난 3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 지난 3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동아일보 역시 4일 “장씨는 2008년 하반기 박문덕 회장과 방용훈 사장, 권재진 전 장관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 동석했다”며 “권 전 장관은 당시 대검 차장이었다. 권 전 장관은 박 회장의 초대로 장씨가 있는 술자리에 합석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장씨가 숨지기 전 2009년 2월28일 남긴 자필 문건을 보면 “(김종승 소속사 대표가)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고 나온다. 대검 조사단은 이 문건에 적시된 ‘방 사장’의 유력한 인물로 방용훈 사장을 의심하고 있지만, 당시 방 사장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한 차례도 조사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 방용훈 사장과 가까운 관계이자 검·경 수사 당시 검찰 내 2인자였던 권재진 대검 차장도 장씨를 함께 만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의 부실수사와 외압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권 전 장관은 대검 차장을 지낸 후 이명박 정부에서 서울고검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했다.

지난 7월31일 방송된 MBC PD수첩 ‘고(故) 장자연’ 편 2부 방송 중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사진이 나오는 장면.
지난 7월31일 방송된 MBC PD수첩 ‘고(故) 장자연’ 편 2부 방송 중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사진이 나오는 장면.
지난 7월24일 방송된 MBC ‘PD수첩’에 출연한 장씨의 전 소속사 동료 배우 윤아무개씨도 장씨와 함께 ‘밤에 본 적이 있다’는 사람으로 방용훈 사장과 박문덕 회장을 지목했다. 방 사장이 장씨를 만났다는 2007년 10월 식사자리엔 윤씨가 없었기 때문에 윤씨가 방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고 지목한 건 장씨와 방 사장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황을 뒷받침해준다.

아울러 검·경 수사 과정에서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의심받았던 스포츠조선 전 사장 A씨는 대검 조사단에 “2008년 9월 방용훈 사장과 장씨가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 내용은 방 사장의 최측근이자 광고업체 대표인 한아무개씨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오늘이 A씨를 취재한 내용과 대검 조사단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2008년 9월 또는 비슷한 시기에 방용훈 사장은 장씨와 만났는데 이 자리엔 박문덕 회장과 권재진 전 장관, 전직 탤런트이자 장씨와 가까운 고아무개씨 등도 합석했다.

전직 조선일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장자연이 방 사장과 박문덕 회장, 권 전 장관을 만났다는 것은 방 사장 측근으로부터 나도 직접 들었다”며 “장자연 사건 수사 당시에도 권 전 장관이 방 사장을 보호하려고 많이 힘썼다는 말이 있었고, 모 일간지 사회부 기자가 관련 내용을 취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7월7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 지난 7월7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앞서 장자연 사건이 불거졌을 때 경기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PD수첩’과 인터뷰에서 “(방상훈 사장에게 경찰서에) 들어와서 조사를 받으시라고 하니 (조선일보 간부가) 나한테 와서 정권을 운운하면서 협박하니까 (힘들었다)”며 “방상훈 사장 이름이 거명되지 않게 해달라고 조선일보 측에서 경찰에 굉장히 거칠게 항의해 모욕으로 느꼈고, 정말 협박으로 느꼈다”고 폭로했다.

이어 지난달 20일 YTN은 “장자연 사건을 담당했던 김형준 전 성남지청 부장검사가 대검 조사단에 ‘검찰 내부에서 (장자연 강제추행 혐의 피의자를) 잘 봐달라는 일부 청탁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하면서 수사팀에 대한 외압이 경찰뿐 아니라 검찰에까지 전방위로 이뤄졌다는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조만간 권 전 장관이 장씨가 있는 술자리에 가게 된 구체적인 경위와 장씨 사건 수사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또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방 사장과 조선일보 측의 청탁이나 외압이 있었는지 등도 추가 증언을 확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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